Kinoki

[나인 라이브스] pt.1. 인생과 짐

The Skeptic 2010. 7. 10. 00:56

[Nine Lives] pt.1. 인생과 짐

 

영화에선 9개의 삶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살아가는 모양새는 평범한 듯 보인다. 아니 결코 평범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영화는 평범하지 않다라고 말할만한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산드라가 왜 감옥에 있는 것인지, 두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다이애나는 왜 예전 남자친구를 그렇게 애닳도록 잊지 못하는지, 세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홀리는 왜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9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대체로 모두 그런 식이다. 말하자면 그런 소소한(?) 것들은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다. 얼핏 참 말이 안 되고 불친절한 것 같지만 실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그런 사소한 것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그 문제가 그렇게 사소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에피소드들중 드물게 매우 친절한 편에 속한 다섯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사만다는 반신불수인 아버지와 그를 돌보느라 지친 어머니와 함께 산다. 동부에 있는 대학,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젠 바다건너 우리들에게조차 친숙해져버린 이른바 아이비 리그로 통칭되는 명문대학에 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그 이유는 부모님때문이다. 사만다는 쉴 새없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오고가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푸념을 상대한다. 안 좋은 낯빛 한 번하지 않은 채로. 그래도 그 행위의 결과는 눈물일 뿐이다.

 

모든 에피소드가 그런 식이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힘겨워 하거나 혹은 자신이 아닌 어떤 다른 막역한 이의 관계속에서 힘들어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냐?'는 반문인 셈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아홉번째 마지막 에피소드. 딸과 함께 누군가의 묘지를 찾은 매기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짐을 지고 나아가는 거야."
"다들 어떻게 그걸 견뎌내는지 모르겠어."

 

그리곤 딸아이의 무릅을 베고 눕는다. 카메라는 이들 모녀의 모습을 담다가 천천히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모녀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딸은 보이지 않고 엄마는 돌아갈 준비를 한다. 정리한 자리를 가방에 넣던 엄마는 문득 잊었다는 듯 포도 한 송이를 꺼내 묘비위에 올린다. 처음 묘비앞에 자리를 깔자마자 딸에게 주었던 그 포도, 딸이 엄마가 잊어버린 줄 알았다고 말하며 즐겁게 먹던 그 포도. 그 묘는 바로 딸아이의 묘였던 것이다.

 

지치고 나이도 많이 먹었지만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꼭 와볼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짐, 마음의 짐. 그 짐을 지고 사람들은 오늘도 살아가는 거다. 누구나 그렇다. 누군가에게 어떤 것이 그토록 무거운 짐인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p.s.
어쩌다 보니 스포일러가 되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데 전혀 지장은 없다. 아니 스포일러가 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이 영화를 먼저 본 이들이 마지막 에피소드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너무나 재미없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5번째 에피소드 즈음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강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걸 완결시켜주는 것이 바로 마지막 에피소드였다. 그러니마지막 에피소드는 그냥 흘려보지 말고 두 번이상 다시 되돌려볼 것을 권한다. 물론 영화 전편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 더 좋겠지만 영화의 특성상 사실 그건 조금 무리라고 본다. 그래도 정말이지 이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 모두 연기 너무 잘 하고 영화도 아주 휼륭하다. 간만에 마음의 때가 한꺼풀은 벗겨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