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대 고현정
이런 구도는 사실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비판하거나 칭찬하고자 할 때 다른 것과 비교하는 방식은 두 비교대상이 매우 유사한 경우엔 적용가능한데 실제로 그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자연과학의 실험실 문화를 자주 비판하긴 하지만 그 가치까지 폄하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실제론 거의 존재하기 불가능한 상황을 임의로 만들어 내고 실험을 총해 그 결과를 비교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화제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한 무더기로 묶였기에 그냥 인용한다. 일단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 역시 문근영의 견해에 동의한다. 문근영의 수상소감 역시 시청율을 지적하긴 했지만 그와 함께 드라마 제작과 방송의 전반적인 인프라와 관련된 부분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정곡을 찔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방송사에서 외주제작을 통해 제작비를 절감하겠노라는 주장은 실제론 드라마 제작의 자금 부족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환경에서 좋은 드라마가 탄생하길 바라는 건 사실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평론가들과 시청자들의 칭찬과 사랑을 받는 드라마가 탄생한다는 건 온전히 제작진과 출연진들의 노력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인 양 여기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다는 점이다. 문근영의 소감은 바로 그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다.
반면 고현정의 수상소감은 사실 핀트가 어긋났다. 드라마 제작환경을 지적했다는 건 같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을 모르면 말을 말라는 건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인들은 그런 걸 알리가 없다. 그렇다고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드라마 제작환경이 열악한 것을 넘어서 불공정한 관행이 이어진다는 건 사회의 한 부분이 썩어가고 있다는 의미이며 어떻게든 관심을 갖고 시정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걸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가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는 이상 결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늘 말하지만 그래서 대한민국이 매번 요 모양 요 꼴인 거다. 뭐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예계의 화려함과 정글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스타들만 알 뿐이다. 그 연예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관심이 없다.(주1)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면 국민들이 관심을 갖도록 알려야 한다는 것이지 '모르면 말을 하지 말라'고 반응할 문제는 아니다.
두번째 문제는 시청율이다. 사실 시청율과 국민들은 아무 관계도 없다. 시청자들은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재미라는 기준에 따라 드라마를 선택할 뿐이다. 어떤 드라마가 시청율이 좋다고 해서 모두 그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다. 물론 시청율이 좋다고 알려진 드라마를 선택할 확률은 높지만 이것 역시도 이미 앞선 시청자들이 어떤 드라마를 시청하고 선택함으로서 시청율이란 통계가 나온 다음에 이루어지는 2차 선택이란 면에서 보자면 사실 큰 의미는 없다. 결국 시청율이란 건 국민들이나 시청자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오히려 방송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만 유효한 지표일 뿐이다. 따라서 시청율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방송에 종사하는 이들이지 시청자들은 아니다. 결국 시청율을 핑계로 국민들을 비난할 순 없다.
문근영은 핀트를 정확히 맞췄고 고현정은 빗나갔다.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수상소감을 공손하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현정을 비난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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