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모독죄
한명숙 전 총리가 국기를 밟고 선 사진을 핑계삼아 남조선 극우 파시스트 늙다리 단체가 국기 모독죄로 고발했고 조사에 들어갔단다. 내 성향상 이런 류의 쓰잘데기없는 죄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다. 대저 인간이 집단을 이룬 이래 집단이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는 건 끊임없이 계속되어온 문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단 한번도 한 쪽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한 적은 없다. 비정상적인 경우엔 존재하기도 했는데 바로 전쟁이다.
이 경우엔 집단의 가치가 개인의 가치를 무지비할 정도로 찍어 눌렀고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피치 못할 상황이지만 잘못'이란 것이었고 결론은 '전쟁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역사적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쟁을 불가피한 도구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이란 나라로 그 범위를 한정짓고 보면 아주 많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한반도로 그 범위를 넓히면 한반도에서 아직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두 가치의 긴장관계속에서 내가 손을 들어주는 쪽은 대개의 경우 '개인의 가치'다. 물론 이 '개인의 가치'는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엔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들 정말 많다. 전체주의에 동조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으면서도 무분별한 개인의 자유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고로 내 기준에선 국기따위 밟았다고 그것을 범죄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해줄 수 없다.
얼마전에 어느 군바리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을 사격 훈련의 표적지로 사용했다. 그랬더니 북한에선 즉각 도발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을 단순히 우리와 적대적인 집단이니 국가라고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겐 별로 문제가 안 될 테지만 엄연히 북한은 유엔에서 인정하는 독립 국가다. 그런데 남한은 심심하면 그런 국가의 국기를 불태우고 국가 지도자의 모형을 화형시키거나 심지어 사격장의 표적지로 사용한다. 이건 정상적인 일일까?
얼마 전에 일본의 어느 지방현에서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제창할 땐 모든 사람이 기립하여 오른 손을 왼 쪽 가슴에 얹는 예를 표해야 한다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남한을 비롯한 많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 이유는 알다시피 기미가요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무력으로 강점하고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끼친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기미가요는 엄연히 일본의 공식 국가다. 타국에서 그런 것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
집단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들중에도 지금 현재 일반화되어있는 국가라는 조직의 구조와 위상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이라면 응당 그런 일은 벌어져선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해당 국가에 대한 적대행위와 내정간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행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적 가치를 강조하는 이들은 앞서 언급한 전쟁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타국에 대한 적대행위와 내정간섭이 결과는 무력충돌이니까. 결국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집단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어야 한다.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유산을 거론하는 것도 바로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겉보기에 동일해 보이는 가치관을 공유한 것같은 이 두 그룹이 실상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인권이란 개인의 가치를 거론하지만 사실 이들은 집단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심지어 북한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국가관을 지닌 이들이다. 반면 일본의 기미가요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집단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진실로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는 반면 앞서 언급한 전체주의적 국가관을 지닌 이들도 일본의 기미가요 문제에 대해서 반대를 표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적인 현상은 왜 벌어지는 걸까? 전자의 경우는 단순하다. 정치적인 선택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부합하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 기준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는 이들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사실상 이루기 어렵거나 혹은 이루어 봐야 큰 현실적 의미도 없는 목표를 설정함으로서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인 이들인 것이다. 때문에 자신들이 믿지도 않는 개인 중심의 가치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알다시피 일본제국주의라는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적 현실에서 비롯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진실로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단순한 민족주의적 가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란 가치가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남한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제국주의 반대 흐름은 그저 그런 민족주의란 차원을 넘어 폐쇄적이며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 즉 사실상 인종차별주의의 성향이 짙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성향이 단순히 일본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이들은 백인들에겐 그런 차별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국기 모독같은 말도 안 되는 죄같은 거 거론하지 말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