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의 한 대목과 관련된 글을 쓰고 난 뒤 문득 든 생각 하나. 실제로 우리가 누군가를 혹은 불특정 다수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대체로 '특정한 부분'에 관해서다. 그 이야기가 중언부언 길어지다가 감정적으로 전체에 대한 비난(이런 과정을 거쳐 나오는 이야기들은 '근거있는 비판'인 경우는 극히 드물고 거의 대개가 '근거없는 비난' 수준이다)으로 넘어가는 것도 흔한 일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애시당초 우리의 비판과 비난은 분명히 전체가 아닌 부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영화와 관련된 글에선 부분적인 문제가 아닌 전체적인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타협이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거론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제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분'과 '전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특히 그런 부분은 이른바 공동체, 가족, 민족과 같은 추상적인 집단과 그 가치를 강조하는 집단일수록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강하다.
가장 비근한 예는 바로 이념 논쟁과 관련된 국가 -가족주의다. 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이념적 지형도가 지나치게 협소한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리고 그 협소한 이념적 지형도의 가장 큰 원인인 민주주의에 대한 몰상식에 대해서 지극히 비판적인 사람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를 일단 서구의 정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때 가장 특기할만한 사실중의 하나는 서구의 국가들 중 공산당이란 정치조직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사회주의와 관련된 정치조직의 영향력이 극히 미미한 국가는 사실 오로지 미국 하나뿐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최강대국이고 따라서 세상이 그 영향력 하에서 굴러간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학술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을 놓고 보자면 이런 '미국적 예외'와 같은 현상은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지 보편적인 경우는 아니다. 즉 현재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라고 바라보는 것은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극히 예외적인 '미국적 예외'에 해당하는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뉴라이트 극우 단체들의 주장,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국적 예외'를 받아 들이라는 것인데 보편적인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외적인 것부터 받아 들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미국적 예외'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혹은 우리에게 얼마나 맞는 것인가를 논의조차 해볼 수 없었다는 것 역시도 매우 '예외적인 현상', 그것도 민주주의적 상식과 유리된 '예외'라는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역사적 사실들 덕에 대한민국의 협소한 이념적 지형에 대해 지적을 하는 나같은 사람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이런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소리하려면 북한가서 살아!"
심지어 나랏일 하신다는 국회의원들조차도 그런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이념적 협소함이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민주주의를 미국적 예외가 적용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따라서 미국적 예외가 적용된 민주주의(정확히 말하면 이런 것을 민주주의라고 불러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지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나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이 되고 공격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난 대한민국 헌법중 그런 부분이 적시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난 그들의 인식수준과 관련해서 싸우고 싶지는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매우 좁은 광신도들과 싸운다는 건 아뭔 의미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부분과 전체를 구분해주었으면 할 뿐이다. 물론 그걸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적어도 광신도는 아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p.s.
'미국적 예외'라는 건 대한민국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론 상당히 논란거리가 많다. 그걸 모두 다 들여다 보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단 직관적인 이야기만 하나 하자면 '미국적 예외'라는 건 말 그대로 일단 '미국에서<만> 예외가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우린 미국이 아니다. 미제라면 똥도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알지만 그래도 우리와 미국은 모든 면에서 굉장히 다른 나라다. 그들의 예외가 우리에게도 자동적으로 예외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거대한 인식론적 착각이자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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