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난 신용카드가 한 장도 없다. 심지어 발급받은 적도 없다. 은행으로부터 입출금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하나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 나이에 나처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란 점을 잘 알기에 내 사례를 일반화할 순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적어도 '과연 신용카드란 것이 그렇게까지 필요한 것인가?'하는 의문의 출발점은 될 수 있다.
신용카드 한 장없어도 일상생활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소비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간혹 돈은 쓴다. 그럴 때마다 참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작은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만원, 2만원정도 되는 돈을 카드로 결제한다.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 음료수 하나 사면서 카드 내놓는다. 난 그걸 볼 때마다 솔직히 기분이 별로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카드사 수수료율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걸 보면서 매우 합당한 지적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카드사에게 돈보따리를 안겨준 사람들이 누구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애시당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부주의한 존재들이며 타인의 사정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도 잘 안다. 물론 난 그런 현실이 올바른 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책제목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이미 다 배웠고 그 배움을 기준으로 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건 전혀 올바른 일이 아니니까. 불행히도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유치원에서 배운대로 살면 남들 다 부자되도 혼자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춘 나라라는 점정도일 것이다. 뭐 큰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물론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도 가난에 허덕이는 걸 보면 안쓰럽긴 하지만 말이다.
난 세상이 단순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 따라갈 능력 안 된다) 금융역시 마찬가지다. 카드사들이 저마다 각종 혜택을 내세우며 카드발급을 권하지만 결국 그 혜택역시 카드 사용자들이나 혹은 가맹점들의 수수료로 채워지는 것이다. 결국 당신이 누리는 혜택은 다른 이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단지 카드사라는 중간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뿐이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 카드사의 혜택은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 부조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누구가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일 뿐이다.
앞 일을 예측하거나 예단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내가 신용카드를 사용할 확률은 아주 적을 것이다. 적어도 난 그런 삶이 근미래까진 사람들에겐 더 이득이 될 거라고 본다.
p.s.
휴대폰이 등장한 이후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화번호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같은 의미에서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제 계획능력이 얼마나 될까? 통계나 수치는 없지만 내 경험만 놓고 보자면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지출행태가 방만했던 건 사실이다. 방만하게 소비해도 될만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안 될 테지만 그 반대인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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