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거지
노파심에 일단 먼저 변명부터 하고 보자면 난 일부러 꼬투리를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눈에 띄는 거다. 오랜만에 엄니가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요 며칠 사이 엄니와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차려먹는 동안 엄니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필이면 그 시간이 울 엄니께옵서 한창 드라마를 보실 시간인 것이다. 물론 난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따라서 대체적인 스토리가 어떤지는 거의 모른다.
참 미안하지만 이번에 하려는 이야기는 제목도 모르는 드라마다. 그 중 한 장면이다. 딸내미가 집을 나가 사는 모양인데 아직 집으로 돌아오진 않은 듯 하다. 그래서 다시 나가려고 차에 오르려는데 웬 젊은 놈이 나와서 제지한다. 그리곤 한다는 말.
"부대표님이 나가지 못 하도록 하셨습니다. 전 부대표님 말만 듣습니다."
오! 제법 강경하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 실강이를 하던 다음 장면에 또 웬 젊은 넘이 등장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부대표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테니 그만 하시죠."
그랬더니 당장 꼬리를 내린다. 응? 응? '부대표님 말<만> 듣는다'며? 저 젊은 넘 하는 말들어보면 부대표님이 아닌데 왜 그 넘 말은 듣는게냐? 아... 내가 다 민망하다.
두번째 장면은 꽤 유명한 드라마 '브레인'. 신하균을 열심히 쫗아다니는 한 여자가 아버지와의 식사자리 마련했다며 나오라고 우겨서 나간다. 그 자리에서 아빠라는 양반이 자기 딸에게 딸자식이 있다는 것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 신하균은 모른다. 그런데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여자 정말로 자기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거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런데 말이다.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관심이 있건 없건 어느 여자의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다. 적어도 그런 자리가 가지는 상징성은 교제, 그것도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라는 의미가 상당히 깊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게다가 참으로 곤란하게도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몯는다. 남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처음 들었다며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자초지종을 캐물어야 할까 <그런 자리에서?> 아니면 여자를 보고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숨겼냐며 물이라도 끼얹고 뛰쳐나왔어야 했을까 <그런 자리에서?>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나고자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부모님이 계시는 그런 자리에선 그냥 '알고 있었다'라고 대답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나중에 둘이 만나 해결했을 것이다. 이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모자란 여자는 신하균의 이런 반응이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의사표시로 받아 들인다. 아니 왜? 주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 혹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호들갑을 떨어줘야만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내가 보기엔 신하균의 대처는 고마워해야할 일이지 섭섭해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여자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물론 드라마속 그 여자가 워낙 생각이 없는 캐릭터라면 충분히 납득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식사자리에서 보인 그 녀의 자세를 보면 딱히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그래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뭐 그렇다고 이런 정도의 일들이 드라마에 크게 흠이 되진 않는다. 그저 어쩌다 보니 내 눈에 띈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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