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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The Skeptic 2012. 1. 30. 02:58

나는 가수다.

 

오랜만에 '나는 가수다'를 본방으로 봤다. 그리고 늘 느끼는 2가지. '참 노래들 잘 한다', '어느 정도 편향된 성향이란 건 어쩔 수가 없구나'. 첫 항목은 나가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그다지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역시 문제는 두번째 항목이다. 고음위주의 가창력에 대한 일종의 편향성이란 건 프로그램 초기부터 문제가 되어왔던 지점이다. 오죽하면 '나는 성대다'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일반 청중이든 전문가든 고음이 잘 나오고 고음처리가 매끄러운 것을 가창력의 중요한 요소로 보는 건 사실 일반적인 견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가수가 그런 고음에 편중된 길만을 가는 것도 아니다. 초창기 멤버인 이소라의 경우 다른 가수들에 비해 고음이 돋보이는 가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특한 색깔로 큰 호평을 받았었다. 결국 굳이 고음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기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상당한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나같은 경우엔 순위같은 것엔 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최근엔 더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순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순수한 청중이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가수들의 경연을 보면서 나름의 순위를 매긴다. 물론 그 순위란 것은 가수들의 가창력 순위가 아니라 사실상 편곡에 대한 순위다. 오늘만 해도 내 순위표의 하위권에 매김한 것은 이영현과 적우, 이현우, 박완규였다. 이영현의 경우엔 불행히도 첫출연, 첫경연에 하필 첫순서라는 불운이 따른 결과다. 순서만 조금 바뀌었더라도 그런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그렇더라도 첫출연과 첫경연이란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었을 지는 잘 모르겠다만. 

 

반면 적우는 편곡상의 실패, 이현우와 박완규는 선곡의 실패를 지적하고 싶다. 원곡이 있고 그 원곡이 가진 장점이 있다. 그 곡을 다시 부른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원곡의 의미를 더 잘 살리려는 것, 원곡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 첫번째도 쉽진 않지만 두번째는 더욱 어렵다. 게다가 두번째의 경우 제 아무리 제해석을 하더라도 결코 손대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그럼 점이 어려운 거다.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 한 번'같은 경우는 미안하게도 이현우와 그리 어울리는 노래가 아니다. 원 곡의 분위기와 조하문이란 가수의 음색 자체는 이현우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노래는 오히려 이영현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조금은 애절해야 할 노래를 소화하기엔 이현우의 목소리는 너무나 품격(?)이 넘친다고나 할까. 그리고 앞으로도 만약 같은 분위기로 노래를 할 거라면 이런 선곡으론 좋은 평을 받긴 힘들 것 같다. 이현우의 음색 자체가 드라마틱한 노래엔 그다지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다. 

 

적우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현식의 '어둠, 그 별빛'이란 노래는 그야말로 탄식, 그 자체인 노래다. 그런데 적우가 새롭게 편곡하여 선보인 곡은 원곡이 가지고 있던 드라마틱함을 확실하게 반감시켰다. 문제는 그렇다고 새로운 편곡이 원곡에 비해 뛰어난 점이 있었는가 그렇지도 않았다. 원곡은 가사와 가사사이의 맺고 끊음이 확실한 맛이 있다. 그리고 그 단절을 통해 드라마틱함을 증가시키는데 반해 적우의 노래는 그저 밋밋하게 이어져 나가기만 했다. 원곡의 장점이 사라졌는데 새로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박완규의 경우는 사실 내심 아주 불만스러웠다.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란 곡은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지아비의 독백을 담은 노래다. 즉 노래와 그 노래의 가사가 담고 있는 의미가 너무나도 명확한 노래다. 사실 이런 노래는 원곡이 아예 잘못 만들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다르게 해석할 여지 자체가 별로 없다. 물론 박완규의 독백은 그런 것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독백, 그것도 나이든 지아비의 독백이 그런 절규일 것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박완규의 경우 역시 선곡의 실패라고 본다. 

 

반면 신효범이 부른 펄시스터즈의 '떠나야할 그 사람'같은 경우는 이번 경연 최고의 노래였다. 경연 내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래라고 걱정하던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이 노래를 안다. 그런 한편 이 노래를 안다는 사람들이 해놓은 평을 보면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언가 많이 착각하는 지점이 있다. 내가 내 나이보다 오래된 노래를 아는 이유는 그 노래가 '락'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는 김추자, 펄시스터즈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고로 폭발적인 락으로 해석해낸 신효범의 시도는 새롭다기 보다는 그저 새로운 버전에 불과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신중현이 만든 '꽃잎'이란 곡이 후대에 더 강렬한 락으로 다시 불리워져도 원곡과 큰 괴리감이 생기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연의 1위는 거미다. 내가 순위에 무슨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난 거미의 나는 가수다 출연이 확정된 이후로 경연에서 '누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1위는 거미였기 때문이다. 거미가 경연중에 가사를 까먹더라도 혹은 음이탈을 일으키더라도 무조건 1위는 거미고, 거미가 탈락하거나 혹은 명예졸업을 하지 않는 이상 1위 역시 무조건 거미다. 타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