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지만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며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어떠한 실재와도 무관하며 그 자체의 순수한 시뮬라크르(모방)다> - 보드리야르
아마도 이미지, 모방 혹은 가상현실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견해를 표방한 이가 바로 장 보드리야르일 것이다. 그리고 한 때 우리 나라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 열풍과 함께 꽤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이런 견해는 엉뚱하게도 게임이나 미디어의 폭력성과 선정성, 그리고 그 폭력성과 선정성이 실재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란 주장을 지탱해주는 논리라는 형태로 더 많이 인용된다. 그런데 정작 장 보드리야르는 단순히 그런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보드리야르가 문제삼는 것은 현대 사회가 소비와 미디어가 중심이 된 사회라는 것이다. 소비와 미디어의 결합은 알려졌다시피 과잉 현실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광고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속의 광고들은 대부분 '과장'이다. 단지 그 '과장'이 지나친가 아닌가만을 규제할 뿐 과장 자체는 용인한다.
그렇게 우리는 실재로부터 출발하지만 실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를 접하고 그 이미지들을 다시 소비하며 살아간다. 익숙한 예를 들자면 '침대는 과학입니다'란 친숙하고 오래된 광고 카피가 그렇다. '침대는 과학인가?' 인간에게 좀 더 편안한 수면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받아 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라면 굳이 그 회사의 그 침대만이 과학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런 기준이라면 침대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농산물이 더 과학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광고가 '침대는 과학'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미디어에서 대중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즉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지 이미지의 부정적인 영향만을 지적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실재로부터 기인하지만 실재와 똑같지 않은 이미지를 우리는 더 친숙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는 거다.
현대 소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보드리야르의 주장은 사실 지나치게 극단으로 흐른 감은 있다. 그래서 늘상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 혹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사고들을 지칭하는 데 자주 이용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사건사고들 역시 보드리야르의 주장보다는 그 사건사고를 일으킨 이들의 개인적인 문제점들이 선행한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말이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인간은 현실과 가상을 그럭저럭 잘 구분하며 살아간다. 단지 그런 구분을 하는데 있어서 곤란함을 느끼는 이들조차도 대부분은 소비와 미디어의 영향탓이라고 보다는 올바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탓인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