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개론과 세대론
건축학 개론 관객이 사백만명을 돌파했단다. 이전 한국 멜로 영화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넘어섰다고 한다. 관객숫자가 영화의 질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중성이란 측면만큼은 정확히 반영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영화자체의 매력이라기 보다는 시대상황적인 운도 많이 따랐다고 봐야할 것이다.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시기적으로 70년대 초반 생들의 대학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또 잘 알려졌다시피 70년대 초반 생들은 일단 머릿수부터 압도적이다. 기억하기론 내가 대학엘 입학했을 당시에도 경쟁율이 최고로 높았는데 그 이후로도 2년 연속으로 최고 경쟁율 기록을 갈아치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 그들이 이제 대부분 40대 초반을 형성하고 있다. 당연히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게다가 좋았던 옛날을 자극하는 영화에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런 반면 난 그 세대들에 대한 그외의 다른 평가들에 대해선 별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이를테면 당시의 세대들이 본격적인 소비 사회로의 진입을 알린 첫 세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게다. 즉 그 당시의 세대들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취향'이란 것을 만들어낸 세대라는 평가다. 그걸 뒤집어 말하면 60~70년대 불어닥친 고도성장의 열매를 처음으로 맛보기 시작한 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엔 상당한 헛점이 있다. 그 당시에도 분명한 수준의 빈부격차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 말은 곧 일부는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정도는 입에 물고 태어났지만 또 다른 일부는 빈곤의 수렁, 그것도 역사상 최초로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인생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최초의 세대라는 사실이다.
본격적인 소비사회는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그 소비사회를 제대로 혹은 그나마 향유할 수 있었던 이들이 절대다수는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적인 경제적 여건이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소비사회가 조장한 가치를 모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매우 불행한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취향'이란 것이 과연 개인적인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단순한 '취향'의 의미였을까? 아니면 소비사회가 강제하는 가치를 누가 더 잘 따라잡는가를 나타내는 것이었을까? 난 후자가 더 타당한 설명이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세대론'이란 그럴싸해 보이는, 그러나 속을 파고 들면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분류법이 가지는 명확한 한계인 것이다. 즉 세대론은 당대에 드러난 특징적인 문화적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분류법으로선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을 제한적이나마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분류법은 아닌 것이다. 특히 사회 경제적 배경에 대한 고려없이 단순히 부분적으로 드러나 문화적 특징으로 세대를 묶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시대와 역사를 오독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게 만들 수도 있다.
p.s.
혹시 시티폰을 기억하는가? 만약 당신이 삐삐 정도가 아니라 시티폰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건축학 개론 세대임이 확실하며 심지어 그다지 큰 의미는 없을지라도 당시를 표현하는 각종 세대론, 그러니까 소비사회로의 진입을 알린 세대라는 세대론에도 부합하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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