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사설이다. 내용 전체를 다루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 글의 제일 첫 문장만 보기로 하자. 이 부분은 요즘 젊은 것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대략적인 개괄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은 없다. 대체로 진보적인데 까보면 보수적인 경향성도 보이고 탈이념적인 모습도 보인다는 식이다. 미안하데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 열에 여덟, 아홉은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굳이 젊은 것들의 정치적 성향이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게다가 과연 남한에서 진보/보수라는 대당을 통해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글의 세번째 문장에서 이런 딜레마가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선 민주화 시대 이후 10년을 단위로 보수적 정부와 진보적 정부가 교체돼 왔다(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적 정부로 볼 수 없다면, 중도개혁 정부라고 봐도 좋다)."
'진보적 정부로 볼 수 없다면 중도개혁 정부라고 봐도 좋다' 진보와 중도 개혁이란 성향의 차이가 이처럼 간단히 넘나들 수 있을 정도일까? 물론 그에 대한 답은 나에게도 없다. 최근의 난 그런 차이 자체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진보/보수라는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진보/중도개혁의 차이가 이토록 미미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차이조차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진보나 보수에 대한 정의자체가 제대로 없다는 거다. 즉 현실의 진보와 보수가 이념이나 이론의 시각에서 보자는 전혀 진보나 보수가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쉽게 말하자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진보라 부르기엔 무리다. 그냥 중도개혁정권이고 우파정권이다. 그리고 현 죄박이 정권은 스스로 자칭하는 것처럼 우파정권이 아니라 민간인 불법사찰같은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우 전체주의 정권이다. 즉 현실과 학문적 정의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거다.
문제는 여기다. 진보/보수라는 대립항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에 대한 정의가 혼란에 빠져 있다는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이념보다는 합리성인 셈이다. 현실과 인식이 왜 다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찰능력과 판단능력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인식은 다를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극우정권이 스스로를 합리적 우파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극우 정권이 스스로를 합리적 우파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다. 당사자도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듣는 사람들도 그 근거에 대해서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심각하게 결여된 능력은 바로 이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장담컨데 이런 능력이 어느 정도만 갖추어져도 굳이 진보냐 보수냐같은 질문 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세상이 될 거다.
p.s.
그렇다고 내가 이 글쓴 이인 김호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김호기가 그런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적 엄밀함보다는 대중적 소통을 중시하는 것이다. 대강의 틀만 맞는다면 이야기를 끌어 가보자는 것이다. 혹자는 이처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처럼 보이는 접근법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자면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당장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꽤나 좋은 방법이고 대충 누구와도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제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한다고 한들 완벽할 순 없다는 거다. 준비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완벽한 준비라는 미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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