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경기가 끝나고 온 언론이 '그래도 잘 했다'라고 떠들때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우리 나라 특유의 지나친 국가주의적 시각이 경기 평가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사실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 새롭지는 않다. 근거없는 국가주의나 애국심에 현혹되는 건 사리분별 안 되는 이들이나 보이는 행태고 그런 이들의 주장같은 건 그냥 못 들은 척 무시해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조금 불안했던 것은 박주영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병역 연기 문제가 터지면서 사리분별 못 하는 이들의 맹폭을 받은 바가 있지 않던가.
아니나 다를까 경기가 끝나고 하루가 지나자 그런 류의 기사들이 스물스물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간 스포츠의 한용섭이란 기자가 작성한 글은 그 백미를 이룬다.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려고 과거의 경기 자료들을 근거라고 제시하는데 이게 참 우습다. 과거의 자료가 의미가 있는 것은 선수나 선수단이 특정한 상황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경우다. 그나마도 한두경기의 특징만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축적된 자료를 통해서 증명이 되었을 경우에 한한다. 그렇다면 일간 스포츠의 한용섭 기자는 그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일간 스포츠 한용섭 기자의 주장은 박주영이 평가전에서 잘 하고 실전에선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간 스포츠 한용섭 기자가 제시한 자료는 2012년 박주영의 경기가 전부다. 그것도 고작 6경기다. 고작 2012년 상반기의 6경기의 기록을 가지고 박주영은 실전에 약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온당할까? 만약 2012년의 기록만이 아니라 과거의 수많은 경기들의 기록 역시 그런 점을 증명하고 있다면 박주영은 애시당초 대표선수로 발탁되지 못 했어야 했다. 그냥 무심코 읽으면 제법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자료에 불과할 뿐이다.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박주영이 공격진에서 '겉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특정 선수를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최전방 공격수가 다른 공격수들과의 연계 플레이나 주변 동료들과의 호흡은 신경쓰지 않은 채 혼자 나도는 경우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멕시코와의 경기에선 박주영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교체로 투입된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경우 '겉돈다'는 표현보다는 '고립되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며 이런 모습은 문제가 공격전술에 있는 것이지 선수 개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창의적인 플레이' 그런데 사실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공놀이중에 축구만큼 단순한 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축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단순한 경기일수록 '창의적인 플레이'는 나오기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축구경기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란 어떤 것일까? 단순하다. 상황에 맞는 플레이다. 그리고 그 상황의 대부분은 같은 팀 선수들과의 관계다. 그리고 선수들간의 관계를 일정한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건 전술이다. 결국 축구에서 창의적인 플레이, 특히 공격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란 공격수들간의 약속된 플레이를 의미하며 그 약속된 플레이가 다양할수록 그리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성공확률이 높으면 높을 수록 창의적인 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축구의 특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함이고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간의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며 팀스포츠란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기다. 그리고 그것이 축구의 매력이다. 괜히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이 축구에서 더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