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자기 합리화.

The Skeptic 2013. 3. 18. 01:28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들은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니까 가장 유명한 이야기, 같은 칼도 요리사가 들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지만 살인자가 들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된다는 것처럼. 이런 경우는 단순히 물질적인 도구만이 아니라 언어나 지식, 사상, 이념같은 추상적인 도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런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가치중립적인 도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람들이 가치중립적인 도구들에게 이상한 가치를 덧쒸우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기 합리화'역시 마찬가지로 가치중립적인 도구다. 그런데 '자기 합리화'는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다루어 진다. 왜 그럴까? 대체로 그 이유는 거짓과 합리화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이 둘 사이의 차이가 그리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합리화란 자신의 주장, 생각, 행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행하는 정당화 과정이다. 당연히 타인을 설득할 목적이 있으므로 그에 준하는 혹은 준한다고 생각할만한 근거와 추론이 필요하다. 반면 거짓은 그런 복잡한 과정이나 근거가 필요없다. 그냥 주장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거짓말은 그냥 거짓말이지 합리화는 아닌 거다. 때문에 합리화란 최소한의 사회화 과정을 거쳤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선 안 될 필수적인 과정인 거고 아무 때나 욕을 먹어도 될 만큼 막 돼먹은 놈도 아니란 거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욕을 먹을 것은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거짓'인 거고 '자기 합리화'중에서도 일부분이라고 할 '거짓'인 거다. 


내가 굳이 이렇게 '자기 합리화'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이유는 나 역시도 별 생각없이 '자기 합리화'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도 늘상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늘 미래에 벌어질 일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그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간은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와 추론을 통해 정당성을 얻었다고 믿기> 때문에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 것이다. 


문제는 사실 이게 그렇게 만만한 과정이 아니라는 거다. '자기 합리화'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인용되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리고 사실 '자기 합리화'가 사실상 거짓이 되는 이유는 대부분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와 추론>보다도 <믿음>을 더 앞세우기 때문에 벌어진다. 그러니까 근거나 증명 혹은 추론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근거, 증명, 추론을 꿰어 맞추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로 설명해 놓으면 무척 쉬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현실에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이런 종류의 믿음들이란 것이 대체로 국가나 사회와 같은 집단의 암묵적 강압에 의해 대중적으로 파생된 믿음들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라는 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지만 정작 왜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처럼 '자기 합리화'는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것중의 하나다. 단 늘 그렇지만 제대로 했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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