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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과연 무얼 보고 싶었던 걸까? - 설국열차.

The Skeptic 2013. 8. 3. 00:00

영화 설국열차가 개봉했다. 그리고 예상처럼 관객몰이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세계 우명 배우들과 함께 만들었으며 한국영화사상 최대의 물량이 들어간 영화이고 지구 빙하기와 생존과 계급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소재도 매우 신선하며 무엇보다도 봉준호 감독이란 브랜드 가치가 한 몫한다' 라는 건 기자들의 평가고 내 생각은 다르다. 


그렇다고 내가 그 모든 걸 부정하겠다는 건 아니다. 앞의 두 가지, 한국 감독과 외국 유명 배우들(그런데 외국 유명배우가 출연한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한국 영화사상 최대 물량같은 부분은 나도 인정한다. 이 정도야 매년 여름마다 태평양을 건너 날아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늘 내세우는 홍보문구들이고 이상하게도 늘 잘 먹히는 편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 두 가지다. '지구 빙하기의 상황에서 생존과 관련된 계급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소재' 소재 자체는 참 신선하고 대단하다. 누가 아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보편적인 이야기는 세상 어디를 가도 어느 정도 들어 맞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입하면 대부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보편성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에선 일종의 가이드 라인 역할만을 할 뿐 직접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인류보편사를 다뤘지만 커티스를 필두로 한 꼬리칸 사람들의 투쟁에 관객이 깊이 몰입하기 보다는 멀찍이 떨어져 관람하게 하는 정서는 '설국열차'의 뼈 아픈 실책이다." - OSEN 전선하 기자.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소재들을 다룬다. 그리고 거기에 판타지를 섞어 판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늘상 보편적인 의미의 정의가 이기지만 현실에선 보편적인 의미의 정의가 이길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현실에선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놈이 주로 이긴다. 보편적인 소재를 현실적으로 다룬다는 건 이런 걸 보여주는 거다. 당연히 일반적인 의미의 재미같은 건 없다. 


즉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어떤 식으로 플어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감독의 마음이다. 할리우드처럼 판타지를 섞어서 '정의는 항상 이긴다'라는 개구라를 풀어 댈 수도 있고 '정의가 이기면야 좋겠지만 그러긴 쉽지 않을 걸'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후자가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다. 


두번째 이야기, 봉준호라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브랜드라는 표현보다는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브랜드라는 표현은 지나치고 고정적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변화하는 존재다. 나무나 돌멩이가 아닌 이상 인간을 고정적인 존재로 부르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을 통해 한국적 상황을 충실하게 드러내온 그는 '설국열차'에서 계급투쟁이라는 인류 보편적 이야기를 담아내며 관객이 봉준호 감독에게 기대했던 지점을 무너뜨린다."


거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실제로 보진 못 하고 들어서 알고 있는 '플란다스의 개'는 일단 열외로 하자.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 계급투쟁과 관련이 없나?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야말로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영화로 담아냄으로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들이다. 그런 영화가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을까? 만약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이 기사를 작성했다면 부탁컨데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을 추천한다. 아니면 공부를 좀 하시던가. 


봉준호라는 브랜드는 단순히 '한국적 상황을 잘 담아낸다'는 측면에 있는 게 아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감독들이 더 잘 한다. 멜로나 코미디를 잘 만드는 감독들이 봉준호보다도 더 한국적 상황을 잘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은 애초부터 그런 길을 가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적 상황을 충실하게 드러내온'이란 표현 자체가 봉준호와는 거리가 있다. 만약 어떤 관객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그런 걸 기대했다면 잘못된 기대를 갖은 것이다. 그리고 기자 역시 봉준호 감독을 잘 모르는 것이다.(사실 난 영화나 문학같은 예술장르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 한다고 보는 편이지만)


만약 위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시각대로라면 영화 '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같은 걸작들을 만들어 낸 이창동 감독 역시 단지 한국에서 벌어지고 한국말을 사용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적 상황을 충실하게 드러내온 감독'이란 평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들은 '인류 보편적 이야기'와는 큰 관계없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말이다. 그 해외 영화제 심사단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이해하고 상을 줄 정도라니. 이 정도면 거의 천재적인 이해력의 소우자거나 아니면 엄청난 지식을 가졌거나, 다른 문화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가졌거나 셋중의 하나다. 


"메이슨 역을 한 틸다 스윈튼은 기괴한 모습으로 독특하지만 매력적인지는 의문이고, 꼬리칸 지도자 커티스의 절실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연으로 출연한 남궁민수 역의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이 상당한데, 그가 내뱉는 걸죽한 욕설과 목소리는 비로소 이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미안한데 난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 기자의 본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감독이 누구인지, 주연 배우가 누구인지, 왜 한국 감독 영화에 한국 배우가 조연인지, 한국말 대사는 또 왜 이리 자주 안 나오는지을 본 것이다. 단언컨데 기자는 영화를 보았지만 보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애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갖지 못 하면 화를 내고 짜증섞인 울음을 터트린다. 설령 바로 앞에 자신이 갖고 싶어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고 그걸 사준다고 해도 말이다. 



P.S.

참고로 내가 기자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영화를 하나 안다. '디워' 가능하면 마지막 장면에 아리랑이 울려퍼진단는 그 전설의 버전으로 보길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