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가재는 게편?

The Skeptic 2013. 11. 11. 17:38

선덜랜드 대 맨체스터 시티. 


리그에서 아직 1승밖에 거두지 못한채 여전히 강등권인 선덜랜드. 리그와 쳄피언스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맨체스터 시티. 누가 봐도 승부의 추는 거의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선덜랜드가 최근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곤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결과는 선덜랜드의 승리. 물론 올 시즌 리그 상위권 팀들이 하위권 팀들에게 지는 현상이 자주 벌어지다 보니 그리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선덜랜드의 입장에선 대단한 결과를 얻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경기의 승리를 이끈 것은 어떤 요소일까? 경기를 본 사람들, 특히 후반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선덜랜드 승리의 핵심은 수비수들과 골키퍼, 그리고 수비에 적극 가담한 미드필더들이었다. 즉 승리의 원동력은 침착하고도 견고한 수비였다. 그렇다면 그 기준에서 볼때 우리 언론이 극찬해 마지 않는 기성용의 역할은 얼마나 될까? 


미안하지만 난 우리 언론의 호들갑에 그리 동의할 마음이 없다. 심지어 어느 언론에선 선덜랜드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혼자 나선 점을 칭찬하기도 하지만 실제 경기를 보면 선덜랜드의 미드필더들은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뛰어 다녔다. 특히 후반전엔 사실상 원톱 공격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전혀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이런 전형에선 원톱 공격수에게 거의 공이 가질 않는다. 결국 원톱 공격수의 역할조차도 대부분 전방 압박과 프리킥이나 코너킥상황에서의 수비같은 것으로 제한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물며 리그 최상위권 공격력을 갖춘 맨체스터 시티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고 실제 후반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런 상황에서 기성용의 수비적인 움직임은 어땠을까? 미안하지만 난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자주 말하는 바지만 기성용의 수비력은 늘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 지역방어를 할 상황과 대인마크로 나서야 할 상황 자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 하고 움직이는 탓에 늘상 지역 방어에서 대인마크로 나오는 타이밍이 늦는다. 그리고 상대 공격수들은 그 타이밍에 슈팅을 때린다. 특히 이번 경기 후반전처럼 선덜랜드가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전원수비에 나서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단점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공격팀의 입장에선 이런 수비전형을 돌파하기 위한 방법이 마땅치 않다. 개인적인 능력이나 패스를 통한 돌파가 가장 힘들다. 물론 드리블 능력이 탁월한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돌파에 의한 득점만이 아니라 페널티킥도 노려볼만한 상황일 테지만 기본적으로 아예 페널티에어리에에서 공간을 내주지 않는 밀집수비인 경우 그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그리고 크로스를 통한 득점 역시 숫적인 열세탓에 그리 녹록치 않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거리 슈팅이다. 


반면 수비하는 입장에서 중거리 슈팅을 내주지 않기 위해선 일단 공을 잡고 페널티 에어리어로 접근하는 상대 선수는 앞에서 대인마크해줄 필요가 있다. 즉 공을 잡고 접근하거나 주변에서 움직이는 선수는 대인마크가 필요한 거다. 쉽게 말하자면 핸드볼 경기에서 공을 잡고 있는 선수에겐 수비수가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다른 선수들은 수비라인을 지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기성용은 늘 그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한 발 느리게 공격수에게 다가서는 바람에 상대에게 슈팅타임을 내준다. 


카디프 시티의 김보경은 그런 수비전형을 잘 이해하고 움직이며 공을 잡은 상대 공격수와 그 주변 공격수들의 위치까지 고려한 영민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불행히도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기에 김보경은 피지컬적인 면에서 딸리는 편이다. 결국 피지컬과 영민함을 겸비한 선수가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대표팀엔 그런 선수가 별로 없다. 결국 기성용이나 구자철, 하대성같은 선수들이 해줘야 하는데 알다시피 가장 근접한 선수 역시 기성용이다. 그래서 더 아쉬운 거다. 



p.s.

글을 쓰고 났더니 선덜랜드 포옛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사도 포옛 감독이 기성용을 신뢰한다는 식의 해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기사의 말미에 포옛감독이 기성용의 수비능력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별로 대수롭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언론들은 기성용이 맨시티전에서 단 한명의 수비형 미드필로서 기용되었다는 것을 감독의 신뢰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정작 감독은 그 단 한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수비능력'에 대해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수비능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 인터뷰는 리그 최하위권에서 헤매는 팀이 리그 최상위권 팀에게 깜짝 승리를 거둔 이후에 행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텀 선수들의 단점을 지적하는 감독은 없다. 칭찬받아 마땅한 상황에서 구태여 단점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선수들의 사기 문제니까. 포옛 감독에 생짜 신인감독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경력을 보건데 그런 정도의 불문율조차 모를만한 감독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지적을 했다. 


좋게 말하면 기성용의 발전을 바라는 말이고 신뢰를 표하는 말이지만 뒤집어 해석하자면 수비능력의 향상이 없다면 언제든 주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저번 경기 퇴장의 여파로 출장하지 못한 선덜랜드의 베테랑 선수인 리 캐터몰은 적어도 그런 면에선 기성용보다 훨씬 더 나은 선수다. 



p.s.2.

일부 언론에서 언급하는, 그리고 심지어 영국 일간지에서도 언급하는 후반전 기성용의 슛은 잊어라. 골대쪽으로 향하지도 못 해서 유효슈팅으로 기록할수조차 없는 슈팅이다. 그저 강하게 찼다는 것만으로 그런 칭찬을 받아야 한다면 매 경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아야 할 선수들은 공격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이 상대 팀의 역습에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일단 상대팀 골대쪽으로 냅다 차고 보는 모든 선수들이 받아야 할 것이다. 







'아마츄어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시장.   (0) 2013.11.16
FA와 이글스.   (0) 2013.11.11
라이온즈 우승과 시리즈의 결정적 장면.   (0) 2013.11.02
FIP, 기록의 허와 실.   (0) 2013.11.01
보스턴 우승. 이제 남은 건...  (0) 201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