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들과 공놀이를 할 때면 난 늘상 자진해서 수비를 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수준의 공놀이에서 가장 책임이 덜한 자리가 바로 수비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골키퍼란 자리는 잘 하면 본전이고 못 하면 욕을 먹는 자리다. 공격수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가져다 떠먹여준 공을 헛발질이라도 할라치면 온갖 욕을 먹어야 한다. 반면 그 수준의 공놀이 세상에선 수비수는 그 어느 면에서도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이른바 '안전한' 자리다.
어쩌다 보니 인생을 눈에 띄지 않게 평탄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인데 아무래도 당시부터 그런 성향이 보였던 탓인 듯 하다. 물론 누군가가, 특히 나보다 나이어린 누군가가 내게 '어떤 포지션을 선택하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난 수비수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도전도 없고 목표도 없는 삶이란 거 그리 좋은 삶이 아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면이나 사회적 성공같은 부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란 면에서도 별로 권장할만 장점같은 게 전혀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록 그런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단지 내 삶의 족적이나 흔적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인에게 내 삶의 모델이 좋은 것이라고 떠드는 민망한 짓은 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정도는 갖추었다는 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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