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세계경제와 철도 민영화.

The Skeptic 2013. 12. 29. 04:17

고작 한반도 남쪽의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다툼이 세계 경제라는 거창한 것과 연결될 만한 이유가 있을까? 별로 없긴 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돌아가는 상황이 비슷하다. 


먼저 철도 민영화 문제를 보자. 어떤 사람이 한 말처럼 설령 이것을 '당장 민영화하진 않겠다. 그러나 미래는 모른다'라는 정부측 주장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흑자가 나는 부문을 분리하여 자회사를 만들고 적자를 떠안을 수 밖에 없는 부문은 그대로 둔다는 안은 '자회사가 잘 되면 모회사가 망하고, 모회사가 잘 되면 자회사가 망하는 구조'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후자의 경우는 이런 분리안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 경우라면 '망한다'는 주장은 조금 무리한 예측이긴 하다. 


그렇다면 이 구조가 세계 경제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 여기서 모회사는 미국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자회사는 미국이란 국가의 우산아래 성장한 국가들, 독일, 일본, 남한과 같은 나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엔 미국이 재정적자를 무릎쓰더라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성장이 한계에 부딪쳤다. 모회사인 미국은 더 이상의 재정적자나 거품경제를 통해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덕택에 그 우산 아래 호황을 구가하던 이들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독일은 지정학적 위치상 미국의 ㅇㅇ향력에서 벗어난지 이미 오래란 점에서 예외로 볼 수 있다. 반면 일본과 우리는 전혀 젓어나지 못 했다. 


그래서 철도 민영화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자회사인 우리나 일본이 잘 나가면 모회사인 미국의 경제가 위축되며 반대로 미국의 경제가 잘 나가면 자회사인 우리와 일본의 상황이 나빠지는 거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각자 살 길을 모색하는 쪽으로 갈 수도 없다. 그렇게 하기엔 이미 서로 너무 많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일정한 수준의 타협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FTA이며 최근 새롭게 부상한 TPP(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자간 자유무역헙정)인 것이다. 


지극히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명제에 따라 자유무역을 그 바탕으로 하면서도 상호간의 기회비용에서 이득이 되는 산업에 주력함으로서 경제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제안인 셈이다. 얼핏 보면 꽤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제안은 전제에서부터 난관에 빠진다. 일단 '기회비용이란 것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다. 


한미 FTA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던 주장, 자동차 산업을 위해 농산물 시장을 내주었다는 대목을 보자. 이걸 보면 마치 우리가 자동차 산업에서 미국에 비해 상당한 기회비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 역시 자동차 산업은 중요하다. 쉽게 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쇠퇴가 디트로이트같은 대도시를 사실상 슬럼화해버렸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며 그 산업에 종사했던 수많은 인력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었거나 단순하고 임금도 싼 서비스 업종으로 전직했다. 우리의 경우도 수많은 농민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과연 '기회비용'이라 불릴만한 것이 존재하나? 


물론 이에 대해 고전 자본주의는 역시 지극히 고전적인 답안을 내놓는다. 사양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전직을 국가에서 돕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특정 산업에선 숙련공일지 모르지만 다른 산업에선 그저 어수룩한 초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새로운 산업분야에서 숙련공으로, 즉 이전에 종사했던 산업 부문에서 받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선다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그 수준에 못 올라가고 좀 더 낮은 임금과 대우를 받는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양 국의 기업들은 모두 좀 더 싼 인력을 찾아 제 3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산업적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 즉 일자리의 양 자체가 줄고 있는데 그 줄어든 일자리를 놓고 새롭게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청년 세대와 기존 사양 산업에서 밀려난 기성 세대가 함께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결국 책상머리에서 보자면 문제가 없지만 실제 상황을 따지면 아무런 대책도 아닌 셈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기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경제 통계지표들은 나아질 것이고 책상머리 학자와 행정가들은 그걸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근거로 주장할 것이다. 단지 그 경제지표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지만 말이다. 


철도 민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아니 오히려 더 안 좋다. 세계 경제의 경우엔 그나마 기업의 실적이라고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철도 민영화의 경우엔 그럴 가능성 자체가 없다. 그저 자회사가 잘 되면 모회사는 망하는 전철을 따를 뿐이다. 여기에 더해 더 심각한 경우를 거론하자면 이미 흑자가 나고 있는 부문을 자회사로 만들고 그 흑자를 근거도 모회사에게도 그런 실적을 강요하는 경우다. 


철도 산업의 특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초기에 기반시설을 위한 투자가 엄청나다는 것이고 그 이후엔 기반시설 투자보다는 운영을 위한 인건비가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우리 철도 산업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그런 상황에서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가장 유력한 대책은 결국 인건비 축소다. 해고일 수도 있고 임금동결일 수도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철도 민영화 반대의 움직임에 대해 현 정권이 대응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결국 인건비 축소를 대책으로 선택할 것이 가장 유력해보인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다는 건 아니다. 그냥 요금을 올리는 거다. 이 경우엔 소비자가 봉이 되는 건데 이게 무리한 수준에 이르면 자회사고 모회사고 그냥 다 망하는 거다. 문제라면 이 안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박그네 정권의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그 정도 무능함은 예삿 일처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박그네 정권에선 요금 상한제가 존재하는 한 요금인상은 없다고 했지만 뉴스를 보니 열차의 종류를 세분화하고 이른바 고급 열차의 경우엔 요금 상한제를 없애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요금 인상을 특정 열차에만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안이 통과되고 나면 대부분의 열차노선이 그런 열차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KTX의 도입 이후 무궁화 열차의 노선과 

배차가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 그런 가능성을 짐작하게 해준다. 


철도 민영화와 세계 경제를 둘러싼 각종 대책들이란 것이 많긴 하다만 실상 이건 조삼모사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