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이른바 90년대에 대하야.

The Skeptic 2014. 2. 25. 14:38

일단 기본적으로 난 특정 시대를 유별난 시절로 분류하는 것을 그리 반기는 사람이 아니다. 간혹 그렇게 분류 안 하기엔 애매한 시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반박을 받기도 한다. 이를 테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반전운동의 시기나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68혁명같은 시기들, 현재 남미의 역사를 가름하는 아옌데와 피노체트 독재정권 시기같은 것들이다. '강렬하다'는 점,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보자면 분명 꽤 의미있는 시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특징들을 제외하고 그 시간들에 흐르는 의식의 흐름들을 보면 사실 그렇게 별다를 것은 없다고 보는 편이다. 


지나친 일반화와 평균화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지 자신이 속해있었던 시간대란 이유만으로 해당 시기를 어떤 절대적 움직임이 있었던 시절인 것처럼 착각하는 반편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명백한 장점이 있다. 남한 극우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다까끼 마사오와 같은 시절을 보냈다는 의식때문에 당시의 시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무조건 빨갱이라고 반대하고 보는 반편스러운 짓을 하는 것이나 이른바 386들이 80년대를 무슨 혁명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시간으로 미화하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얼척없는 동일시를 강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구잡이 편가르기로 넘어가는 남한 정치풍토에서 볼때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해보는 이야기. 그렇다면 90년대는 어떨까? 일단 그리 유별난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적어도 앞에서 언급한 류의 극단적 동일시와 편가르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절이란 것은 명확한 듯 보인다.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거나 독특한 현상인 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절이든 앞서 언급한 무지막지한 시절의 기운이 꺽이기 시작할 무렵이면 늘상 이런 움직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하루키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탓이다. 


그렇다면 그 시절의 그런 움직임이 별다른 차별성을 전혀 갖지 못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난 그렇다고 본다. 절대성을 강조하는 시절의 무지막지함에서 헤어나온 것은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어떤 부분으로 연결되는가에 따라 사실 모든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시도들이 어떤 점으로 귀결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것이 도착한 지점은 그저 '냉소'일 뿐이다. 혹자는 지금 20대 청년 세대들에게 '냉소를 갖지 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 '냉소'를 가장 먼저 체험한 시절은 90년대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론을 향해 달려갔다는 점에서 보자면 90년대에 드러난 특징적 현상은 그저 역사책 어디에나 나오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흐름이 되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그런 점에서 절대성으로부터 빠져나온 행위를 일종의 의지가 담긴 '시도'라기 보다는 그저 어쩌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다. 


남한 극우들과 이른바 386들의 절대성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루어진 냉소는 역사적으로 늘 벌어지던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에 따르자면 그 쳇바퀴를 제대로 빠져나온, 그래서 절대성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도 냉소라는 의미없는 행위로 귀결되지 않는 길을 간 이들은 늘 언제나 소수였다. 당연히 그런 길을 간 이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되지 않는다면 역시 역사는 늘 그렇듯 비슷한 패턴으로 되풀이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역시 역사적 흐름에서 별다른 특징이라곤 없는 90년대라는 시간을 절대시, 혹은 그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 역시 그저 역사의 쳇바퀴를 다시 돌려보려는 시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꽤 높은 확률로 그런 시도를 하는 이들은 꼰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