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10%. 누가 영웅이 되는가 - 표창원. 성금모금 반대.

The Skeptic 2014. 4. 29. 14:59

이스라엘이 요아브 샤미르란 감독이 만든 '10%, 누가 영웅이 되는가'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다큐멘터리지만 꽤나 재미있게 흘러가는 편이다. 물론 어떤 확고한 결론을 원하는 이들에겐 '별 시답잖은 소리나 늘어놓는 우스운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미안하게도 당신들이나 내가 사는 세상도 꼭 그 정도로 시답잖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건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치고 매우 발랄한 이 영화는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 사진은 나찌 독일하에서 벌어진 나찌당의 대중집회에 참가한 군중들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에서 감독은 모든 이들이 나찌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홀로 매우 뚱한 표정으로 견고하게 팔짱을 낀 채 거수경례를 하고 있지 않은 한 명의 남성을 찾아냈고 '어째서 이 사람은 홀로 경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다큐멘터리도 그렇게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을 통해 감독은 '영웅이 되는 조건'에 대해서 탐색하지만 처음 서술했다시피 확실한 무언가를 제시하진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추상적으로 떠올리는 영웅의 이미지와 현실의 영웅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특별한 능력을 갖춘 어떤 이만 영웅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꽤 흥미롭게 보았다. 그리고 난 감독의 유머러스함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튼 다 보고난 뒤에 처음 장면, 사진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사진. 





한 가운데 있는 인물이 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을 알린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런데 난 다큐멘터리가 끝난 이후 굳이 이 사진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재미있는 장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성의있게 경례를 한다기 보다는 그냥 대충 팔이나 올린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꽤 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과는 달리 아예 사진기를 쳐다보고 있다. 즉 한 눈을 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바로 뒤에 있는 인물을 보자. 경례를 한답시고 팔은 올리고 있지만 정작 그의 시선은 옆사람에게 가있다. 게다가 착시현상인지 모르겠지만 그 옆의 사람은 경례를 하는 게 아니라 옆 사람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대충 상황을 조합하면 이런 거다. 다들 나름 경례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떤 사람이 경례를 장난처럼 친구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고 그때문에 친구가 가를 돌아보는 상황정도 될 것이다. 


말하자면 저 사진속의 인물들중 상당수는 군중집회 자체에 그다지 큰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찌는 독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집단은 개인의 선택권이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 '어느 정도'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절대로 제한할 수 없는 자연권이란 것이 있다. 제 아무리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신체포기각서같은 건 애시당초 법적인 효력자체를 갖지 못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확고한 몇 가지 경우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남한에선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관습적으로 터부시되는 것이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도 포괄하는 개념인데 남한은 애써 사회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본적으로 집단의 지배적 가치관이란 건 각종 이데올로기들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각축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한시적으로 고정되는 것들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건 사실 매우 당연한 결과이자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 이해하지 못 하면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자신이 그런 변화를 추동하는 주체라는 걸 인지하지 못 하며 결과적으로 변화된 현실과 그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 하고 적응하지 못 하는 상대적인 퇴행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지하지 못 한다'는 사실인데 인지하지 못 한다고 해서 그의 언행이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는 의미는 또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집단에 동의하는 행위 역시 비록 수동적일지언정 변화를 만들어 낸다. 물론 억올할 수도 있다. 모르고 한 행위인데 그 책임까지 묻는다는 게 말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그게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이야기할때 중요한 건 그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동의하게 되는 각종 가치관들의 적절성 문제인데 알다시피 현실에선 적절성만으로 특정 가치관이 선택받는 경우는 없다. 기준은 여러 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 기준이 돈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단순한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가치관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가치관이 해당 집단에서 유익한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래서 모든 사건을 접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의 의미를 인지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살기는 매우 힘들다.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인물도, 심지어 역사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는 인물들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 했다. 즉 사건이나 행위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는 것은 특별히 당신이 모자란 사람이어서 발생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문제의 핵심은 '알고자 노력하는 태도'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집단의 지배적 가치관이란 건 각종 이데올로기들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각축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한시적으로 고정되는 것들>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건 사실 매우 당연한 결과이자 과정일 것이다."


표창원 교수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성금모금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성금 모금이란 행위를 중심에 놓긴 했지만 표창원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이번 사건의 의미를 잊지말자'는 것이다. 성금모금이란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고 사건을 망각으로 밀어버리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고 나 역시 공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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