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김성근식 야구.

The Skeptic 2015. 3. 12. 23:38

서울 모 프로야구단의 광팬이신 모 양이 이글스와의 원정경기에 다녀 오셨다. 불행하게도 그 경기에서 모 양이 응원하는 모구단은 졌고 대전까지 원정, 그것도 시범경기 원정을 다녀온 모 양은 우울하고 심기가 아주 불편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일갈하셨다. 


"맞아. 김성근식 야구지."


이 일갈엔 김성근식 야구라 불리는 일정한 패턴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이 섞여 있다. 물론 난 그 패턴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 모 양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응원하는, 그것도 시범경기 원정응원을 다녀올 정도로 광팬인 모 양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이야기다. 


이른바 김성근식 야구에 대한 비아냥은 사실 한 가지로 귀결된다. '승부에 대한 집착'. 여기에 '지나친'이란 단어가 들어감으로서 비아냥은 완성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나친'만 빼버리면 모든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바라마지 않는 최종적인 목적이 되기도 한다. 


이러니 저러니 떠들어도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성적이다. 물론 골수팬들의 경우는 그와 다른 정서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기실 그런 골수팬들은 몇 되지 않는다. 트윈스와 자이언츠가 그 유명한 엘꼴라시꼬를 치루며 다른 의미로 유명세를 치르던 시절 잠실과 사직구장의 한산함과 나른함은 이루 비할 바가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온 유명한 말이 있다. '팀 골수팬은 없어도 야구 골수팬은 있다'고 말이다. 골수팬들은 다들 그렇게 팀이 아닌 야구 골수팬이 되어가는 거다. 


결국 대중성이란 면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이고 더 하자면 그 과정에서 정말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좋은 경기'. '좋은 경기'란 무엇일까?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 경기? 이미 앞에서 언급한 엘꼴라시꼬를 보자. 그 경기들도 대부분 승패가 갈렸다. 그렇다면 선발 투수가 일찍 무너지고 불펜을 방화를 일삼고 어이없는 수비 실책과 주루사가 난무하는 경기를 이긴 성적을 내면 '좋은 경기'인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알 거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구경하긴 힘든 경기. '나보다 남이 더 잘 해서 진 경기'야말로 '좋은 경기'다. 그런데 왜 이게 어려운 걸까?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인 건 맞지만 알다시피 그 통계는 상승과 하강이 있는 편차의 중간치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10타석당 홈런 1개를 치는 타자라고 꼬박꼬박 10타석째마다 홈런을 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기량이 나타나는 편차가 있고 컨디션의 편차가 있기 때문에 전력은 들쭉날쭉이고 성적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파도치는 곡선들이 어느 순간 모두 정점에 이른 양 팀이 펼치는 경기가 '좋은 경기'가 되는 건데 그럴 확률은 적다.


물론 다른 경기도 있다. 어떤 의미로든 전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전력이 더 우월한 것으로 예상되는 팀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치는 경우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근성있는 경기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성적'과 '강팀'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거다. 부상, 컨디션 저하 기타등등 전력이 떨어지는 요인은 수도 없이 많고 그 때마다 팀은 위기에 봉착한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얼마나 어떻게 버텨내는가에 따라서 성적과 순위가 달라지고 강팀과 약팀의 구별이 발생하는 거다. 


난 그것이 바로 김성근식 야구의 강점이라고 본다. 전력은 떨어지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 김성근 감독이 고등학교식 훈련을 한다는 비판 역시 이 강점 앞에서 비난이라기 보다는 칭찬이 되어 버린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강팀의 특성인 '버텨내기'는 결국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투수가 공 하나를 좀 더 정확한 곳에 던질 수 있고 타자가 번트 한 번을 정확하게 대줄 수 있는 것. 그런 기본이야말로 버텨내기의 핵심인 거다. 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 하는 선수들을 가지고 어떻게 버텨내고 성적과 순위를 얻고 팬들의 환심을 얻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잘 버텨내는 팀은 경기에 져도 성적이 안 좋아도 팬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왜? 그것도 분명 '좋은 경기'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이 물러난 이후 맨유가 팬들로부터 욕을 먹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많은 팬들이 근성을 말하지만 난 차라리 기본을 말하고 싶다. 퍼거슨 감독 전후를 비교해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로 실책, 그것도 지극히 기본적인 플레이를 하는데도 벌어지는 실책. 


물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진다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김성근 야구가 지향하는 방향은 지극히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p.s.

'감독의 개입이 지나치다'든지 '지나친 스몰볼'이라든지 하는 비난은 논외로 한다. 그냥 팀전력과 상황에 맞추지 못한 채 하나의 패턴만 밀어 붙이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말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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