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삽질이란

The Skeptic 2006. 8. 29. 02:16

예전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글을 쓰던 시절. 내 글머리에 달려있던 문패들중 하나의 이름이었다. 이 문패가 달린 문안의 글들이 다른 글들에 비해 더 잘쓰인 글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패만큼은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일상생활과 머릿속의 세상이 한번도 일치해본 적이 없었던 인간에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삽질이었으니까. 그래 안다. 난 지금도 여전히 삽질중이란 사실을.

 

그래도 그 삽질덕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부끄럽다거나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단어들로 규정지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삽질이 곧 내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를 규정한다는 지금의 시간을 여전히 삽질로 소비하고 있는 나를 보건데 내 미래의 시간들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될 것은 별로 없다. 인생이 한심해질 것이란 것 외에는.

 

옛날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학교에서 플랭카드를 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는 후배가 글을 쓰고 난 그 플랭카드 천을 잡아주고 있었다. 신나에 페인트를 풀어 글을 쓰다 보면 멀건 페인트가 흐르기도 하고, 플랭카드 천이 접히거나 하면 애써 쓴 글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기억하기론 아마도 그 일은 학교안에서 세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잘 했던 것 같다. 해봐야 티도 안 나고 알아주지도 않는 일들, 그런 일들을 난 참 잘했다.

 

그 날도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과 후배 하나가 '뭐하냐?'고 물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대답은 무척 뜬 금없는 것이었다.

 

"나이들고 재주없으면 이런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도대체 어떤 심리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노동관이었는지 그 어떤 겸양의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자조섞인 비아냥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 한다. 이 말도 어떤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건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동안 짬날때 마다 그 생각을 했는데 결국 답은 찾질 못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삽질이 이런 것이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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