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에 의해 쓰레기매립지로 강제이주 당한 재일 조선인들이 세운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난 2003년 도쿄도 정부는 "수십 년간 무상으로 사용해온 학교 부지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시대, 강제 이주시킨 일본의 원죄는 배제시킨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다행히 재판부는 '도쿄도 정부는 에다가와 조선학교와 합의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문제는 남았다. 학교 부지를 계속 사용하려면 시가의 1/10 가격인 14억원을 도쿄도에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소식을 전해들은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정희성 이사장, 김용택 시인 등은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을 결성했다. 오마이뉴스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의 뜻에 공감해 '함께가요 우리학교' 캠페인에 참여한다. 앞으로 해당 학교 교장과 교직원, 학부모와 학생들의 글이 차례로 실릴 예정이다. 여섯번째 글은 한일 근현대사연구회 김금영씨가 썼다. <편집자 주> |
이 경우의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 사람으로써 태어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편적인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보편적인 일상생활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배우고 느끼는 일상들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모국어를 비롯해 생활양식과 풍습을 인위적으로 배우는 어려움이다. 그러한 어려움이 타의로 타국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착한 나라나 그 사회의 생활풍조에 따라서 다를 것이며, 개개인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이렇게 서두를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어려움의 정도가 너무나 심한 일본동포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역사의 산 증인인 재일1세들을 포함해 그들의 자손들인 재일동포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에서 태어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재일동포들의 삶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모르겠다는 말. 자신가 왜 이곳 일본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를 더 편하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 동포들과 대화할 때 되도록 우리말로 하려고 했던 나의 선의와는 다르게, 은연 중에 동포들이 나의 우리말 실력을 부러워하는 말. 친척들이 한국에 있는데 못 가보고 있다는 말. 일본 유학생활에서 많이 힘들고 가슴이 아팠던 것은 동포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난 내가 누려왔던 일상을 되새기며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난 일본에서 강산도 변할 만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처음 일본 땅을 밟고서 곧바로 느꼈지만, 일본은 정서적으로 내게 너무 맞지 않았고 늘 불협화음을 느껴졌다. 체질에 맞지않은 일본 유학생활을 결정한 나는 항상 주님이 왜 일본으로 인도하셨을까 하는 물음으로 자문을 했다. 하지만 그 답은 그렇게 빨리 나오지 않았고, 재일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야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난 일본으로 가기 전까지 재일동포 사회는 나와 무관한 일로 생각했다. 아니, 사실 재일동포의 존재에도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눈으로 재일동포들의 실상을 확인했을 때 충격이 더욱 컸을 것이다. 내 주위에는 많은 재일동포들이 있다. 많은 분들은 자신이 한민족이라는 것을 떳떳이 밝혔고 민족의 일원으로써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다. 그리고 그 분들 대부분이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짧은 기간이건 긴 기간이건 간에 우리민족학교에서 교육을 받으셨던 분들이셨다. 하지만 내가 만난 재일 동포들 중에는 자신이 재일이라는 것을 숨긴 분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귀화한 사람도 있을 테고, 귀화는 하지않았더라도 자신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일본에 가지 않고 이러한 상황을 전해만 들었더라면, 자신이 재일이라는 것을 숨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생활경험이 있는 난 그들을 이해한다. 물론 가슴아픈 이해이지만 말이다. 가슴아프게 그들이 이해되는 것은 그만큼 일본사회가 배타적 차별주의가 만연한 폐쇄된 사회이며, 아직도 '탈아입구('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에 속한다'는 뜻으로, 19세기 개항당시 일본이 표방한 국제정책)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동화(귀화)되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겉모습만으로는 한민족인지 일본인인지의 여부를 가리기가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조국과 민족에 대해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차세대들에 있어서의 민족 정체성의 유지는 어찌 보면 1세들의 그것에 비해 더 값지고 더 힘든 것일수도 있다. 한민족의 뿌리, 우리민족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이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아무리 집안에서 우리말을 가르치고 민족적 자긍심을 키워준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인 친구들 속에서 지내는 어린아이들이 그것을 지속시켜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체성을 잊지않고 조선인으로써 살아가게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그 밑거름이 되어주는 학교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튼튼한 토양이 되어주는 곳이 다름 아닌 우리학교(조선학교) 인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학교 안에서 친구(동무)들과 함께 서투른 우리말을 배우는 걸음마를 하고, 서서히 우리말에 능숙해지는 기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일본문화와의 다른점들 또한 느낄 것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그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험난한 산들을 넘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사는 동포로써 일본인이 되지않는 한 당연히 넘어야 할 고개들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계기를 주고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이며 책임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뿌리를 숨기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책임한 죄다. 지금 일본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박탈당해지고 있다. 일본인이 대외적으로 그토록 주장하는 기본적인 인권이 일본사회 안에서는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다. 또한 모순되고 비틀어진 일본 사회 속에서 우리아이들의 보금자리는 역사의 살아있는 하나의 산물이지만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보금자리는 당연히 일본정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젠 그 막대한 돈을 마련 하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의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 동포들은 '금전을 통한 해결'이라는 어이없는 중재안으로 아이들의 터전에 대해서조차 양보해야 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어린이를 위한 학교건설을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내에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린이들의 배움 터전을 빼앗아버리고 있다. 일본사회의 양면적이고 위선적이며 비인간적인 면은 용서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참혹한 현실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밝은 모습으로 등하교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콧등이 시큰거린다. 우리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우리말로 재잘거리는 예쁜 아이들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우리아이들의 모습을 전해본다. 일본 정부와 일본 매스컴의 주도 하에 북한 때리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요 몇 년간, 극우 일본인들의 혐조선 붐에 힘입어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노골적으로 조선인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그런 와중에 생긴 일이다.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른 오후의 전철에서, 초등학교 어린이 대여섯명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몇 명의 일본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 어린이들이 내린 뒤 오오야마라는 곳에서 남색 반바지 교복을 입은 네 명의 어린이들이 전철에 탔는데, 순간 귀에 익은 우리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아까 같은 또래의 일본 어린이들에는 미소를 보인 일본인들이 우리 아이들에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계속 우리말로 재잘거리면서 내 옆 빈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어느 학교 다니냐"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어, 우리말 하네" 하며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나도 너희들과 같은 나라 사람이야, 한국 서울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한 명이 "와~ 우리말 잘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도 우리말 참 잘 하네, 너희들이 참 자랑스러워"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들이 "자랑스러워"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 말로 설명을 해주다가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일본말로 설명했다. 아이들은 "아, 그렇습니까"하며 "자랑스러워, 자랑스러워"하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에게 "전철이 나리마스까지만 가니까 나리마스에서 내려서 갈아타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물론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공손히 인사하면서 말이다. 그 아이들이 우리민족의 자산이다
우리 아이들이 철이 없어 그 따가운 시선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매서운 시선들을 온 몸으로 느끼고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믿는다. 그 험난한 일본사회를 비겁하게 비껴가지 않고 그렇게 자신들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그 우리 아이들이야말로 우리민족의 큰 자산이 되리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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