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영화 '밀양'과 딱따구리의 '용서'

The Skeptic 2008. 5. 10. 00:58
이창동이 만든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 '밀양'역시 대한민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오롯이 장식해도 마땅할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그런 영화를 못 만들어서 혹은 그런 이야기를 쓰지 못 해서가 아니다. 인생사 비극과 불행을 말하면서 함께 용서와 구원을 말하는 것, 이렇듯 극과 극인 소재를 다루면서 타인을 공감하게 만드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다. 어쩌면 아주 나중에 이창동 감독이 영화를 만들던 시절을 함께 살아냈다는 이유만으로 축복받은 영화세대란 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명작을 보면서 난 그만 이명박 딱따구리를 떠올리는 불경을 저지르고 말았다. 영화속 전도연이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납치범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 장면에서다. 전도연이 그를 용서하려는 바로 그 순간, 납치범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도 당신이 믿고 의지하는 바로 그 신에게서 <이미> 용서와 구원을 받았노라고, 그래서 지금은 아주 평화롭다고' 그 절대모순의 순간, 솔직히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리곤 바로 이명박 딱따구리가 떠올랐다.

그가 얼마전 친일파 명단이 새롭게 발표된 날 씨부린 싹아지없는 발언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일본을 용서하고 있는데...'라는 말말이다. 그리고 영화 '밀양'의 바로 그 장면을 보면서 그 딱따구리의 얼굴과 '용서'라는 발언을 떠올린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대통령 짓을 해먹고 있는 그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다. 신은, 진정 신은 영화에서 그렇듯 정말 아무나 그게 어떤 씨발색희든 상관없이 마구 용서를 남발해도 된다. 왜? 그가 바로 전지전능한, 그의 결정과 판단이 만인의 것인 신이니까 그래도 되는 거다. 그러나 인간은 그래선 안 된다. 신과 인간은 엄연히 다르니까. 그래서 신의 용서를 받았다는 그 납치살해범을 인간인 전도연은 용서할 수가 없는 거다. 교인들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상이다. 결함많은 인간들은 그렇듯 쉽사리 용서해주면 안 된다.

윤간사건을 두고 여자의 행실때문이라며 마을 전체가 피해자인 여성을 백안시하거나, 그 피해자들의 부모되는 인간들이 합의봐달라며 그 피해여성의 가족을 협박하는 따위의 일,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멀쩡히 한 세상살아가는 일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되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인간이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 산다. 용서라는게 신이 하듯이 그렇게 쉽게 성립되어선 곤란하다. 인간 세상에선 분명한 반성, 그리고 그 반성에 합당한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한 '용서'해줘선 안 되는 거다. 그렇지 않았는데도 용서한다는 것은 그저 귀찮고 신경쓰기 싫다는 의사표시일 뿐이다.

그런데 이명박 딱따구리 색희는 함부로 용서란 단어를 씨부린다. 일본이 일제 36년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고 한 적도 없고, 일본군 성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합당한 사과와 보상을 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노라고 떠들어 대는 그 인간들을 '용서'한단다.

이 정도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인간세상에서 적용되는 법칙을 기준으로 했을때 지금 일본이 보이고 있는 행태들은 결코 '용서'를 해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딱따구리는 그 일본을 용서한단다. 아니 심지어 자신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서하고 있단다. 그 우리들중의 하나일지도 모를 난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말이다.

그리하여 우린 명확히 알 수가 있다. 이명박 딱따구리는 지금 자신이 '태양신'쯤 되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런 걸 일러 인간세상에선 '독재자'라고, '전제군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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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창동 감독과 그의 영화들은 참 위대한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