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스름하다'와 '누리끼리하다'쯤 되는 차이를 언어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미묘하고 미세하면서도 설명하기 무척 힘든 차이들은 의외로 참 많다. 그 중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지'와 '신념'의 차이다.
'누르스름하다'와 '누리끼리하다'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예를 드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무지'와 '신념'의 오묘한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무엇보다도 '무지'의 가장 큰 예는 바로 날이면 날마다 대중교통 수단에서 만날 수 있는 야소귀신씌인 인간들이다. 참으로 열정적으로 야소씨를 외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테레사 수녀도 못 따라갈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것을 일러 '신념'이라 칭하지 않는다. 촛불집회에서 가슴엔 야소씨의 종교적 신념을 담고 입으론 극우 인종차별주의주의자들의 구호를 외치는 얼토당토않은 짓도 불사하는 그들은 그저 '무지'한 것이다.
- 애시당초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기독교, 정확히 말해서 공격적 전도주의로 무장한 개신교가 전래된 이래로 이와 같은 일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긴 했다. 50~60년대 미국의 기독교가 그랬다. 그 뿌리에서 미국의 극우꼴통인 조지 부시와 럼스펠트같은 인간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사엔 항상 기독교적 상징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종교적 의무감에 불타오른 나머지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현재 대한민국이에서 창궐하는 개신교의 뿌리가 거기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나 이명박같은 이들이 사실상 '그' 개신교의 첫 세례자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신념'이란 그와 반대로 늘상 '의심'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런 상황에서도 옳은 것인가?'하는 현실적인 질문들을 항상 품고 다니면서 갈고 다듬어지는 어떤 가치관을 일철어 '신념'이라 하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흔히 '신념'이라 말할때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조차 보이는 않는 어떤 완고함'따위는 사실 신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글과 말을 통해 보면 이와 같은 것을 계속해서 지적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근자에 들어 이런 '융통성도 현실성도 없는 완고함, 즉 무지'가 마치 신념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양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그닥 증명할 길은 없지만 난 이 역시도 일본 재국주의와 군바리 독재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완고함'과 그를 찬미하는 문화는 대체적으로 강고한 집단주의가 판치는 곳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제국주의 국가가 그렇고, 군대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올바른 신념을 가진 이가 강할 순 있지만 강한 이가 모두 올바른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상이 정상보다 더 익숙하게 받아 들여지는 상황이라면 '무지'가 신념인 척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전두환이 독재자긴 하지만 남자답잖아..."
신념이 아니라 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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