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구조화된 상처들

The Skeptic 2009. 2. 16. 02:49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의 소설은 묘한 구석이 있다. 별 것 아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아서 '아! 이 책은 두 시간짜리다' 라고 지레짐작하고 읽다보면 중간중간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머리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소설이 지루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소설 속 군데군데 '툭' 던져져 있는 무언가가 자꾸만 발가락에 채이고 옷소매를 잡아 끈다. 그런 것들이 자꾸만 혀에 돋아난 혓바늘처럼 느껴져서 꼭 한번쯤은 핥아주고 가야 할 것 같아 무심히 지나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면 두시간짜리 소설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틀짜리가 되어 있고, 그 후로도 며칠간을 '아! 참!' 하면서 다시 들춰보게 만든다. 매우 불친절한 소설이다.

 

그런 공지영의 소설이 영화화되었다. 2006년 개봉작이라니 이미 햇수로 삼년전이다. 다행이라면 난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 2000년 이후로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원작 소설과 얼마만큼의 싱크로율을 보이는지 알순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또 한번 공지영 소설의 그 지난함을 거치긴 싫다. 게으른 탓도 있고 이젠 그 채이는 걸음걸음이 웬지 씁쓸한 감상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다. 그 감상이 긍정의 힘이 된다면 좋으련만 요즘 내게 감상이란 예외없이 부정의 향연이 되는지라 더더욱.

 

- 상처

아무튼 이야기가 튼실한 소설가의 글이 원작인지라 여기저기 생각해볼 거리들이 참 많은 영화였다. 그 때문에 오히려 영화관에서 봤더라면 바람처럼 지나가는 런닝타임에 쩔쩔맸을 지도 모른다. 영화엔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꽤나 부유해 보이는 집안의 유정이란 딸내미 한 명과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의 윤수라는 남정네 하나.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간의 공감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처'다. 영화 초입부에 보여지는 윤수의 어린 시절은 지나치게 정형적으로 그려지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가난과 비극의 모습이다. (소설속에서 하나의 정형이 되어버릴 정도로 현실적인 상황이라 생각하면 참 서글프다)

 

그렇다면 유정의 상처는 무엇인가? 15살되던 해, 그 녀는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한다. 문제는 강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전해 들은 어머니의 태도다. 이것 역시도 영화속에서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그려지는데 그 녀의 어머니는 체면과 격식에 목을 매는, 그리고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어 놓아야만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로 이런 인물들의 내면은 나무나 나약하다. 그래서 자신에게 닥치는 고통을 이겨내며 내면의 상처를 통해 성숙해지기보다는 애초부터 그런 상처가 날만한 일을 덮어 버리는, 없는 일인 것처럼 행세하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한없이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문제는 그런 존재도 생리적, 사회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다. 보호받기 보다는 보호해야할 것들이 더 많아지는 어른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짐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상처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윤수라는 인물이 처한 구조화된 가난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 하지만 그건 이미 너무나 많은 매체나 사람들이 말하고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앞으로도 주구장창 이야기할 기회는 넘쳐날 것이니까. 그럼 유정이란 인물의 상처, 성범죄가 남는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성범죄에 대해서 지나치게 너그러운 나라인 것은 이미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아직도 술자리에서 몇 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자랑인 것처럼 떠드는 인사들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내세울게 오죽이나 없으면 그런 걸 내세울까 싶기도 하고, 저 인간의 정신연령은 17세정도에서 멈춰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러다 나이먹어서 발기부전이라도 되면 그 땐 무슨 똥배짱으로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성범죄는 '인격살인' 이라는 거다. 아직도 여자의 몸은 그 녀의 것이지만 순결은 그 녀의 것이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어떤 남성의 것이라고 말하는 나라, 피해자는 세상의 시선을 피해 숨어 살고 가해자는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라에선 성범죄는 한 사람의 '사회적 인격'을 말살하는 살인 행위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도 처녀의 순결에 대해서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는 남성들이 그 고귀한 처녀의 순결을 범하는 남성에 대해선 또 한없이 너그러우며 피해자에겐 '헤프다'느니 '처신이 바르지 못해서'라느니 하는 주홍글씨를 새겨놓는다. 이쯤되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유정의 상처는 어른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어른과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모순된 성의식의 범벅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보면 개인의 비극처럼 보이지만 유정의 상처 역시도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상처다. 윤수의 그 지긋지긋한 가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