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달콤한 인생] 폭력적인 사랑영화

The Skeptic 2009. 2. 12. 02:56

'달콤한인생', 그러니까 2005년도에 만들어진 김지운 감독의 영화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임에도 아주 늦게야 보게 된 이유는 역시 개봉 당시 느와르 영화라는 기조로 홍보가 된 탓이다. 김지운 감독 영화 특유의 다채로운 카메라 움직임에서 비롯된 시선처리, 잘 꾸며진 화면 등등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김지운 감독의 느와르 영화는 영 매치가 안 된다. 외려 박찬욱 감독이었다면 매우 흥미를 끌었을지 모른다. 영화를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매우 천재적인 감독들임에 분명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차이가 난다. 박찬욱 감독이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마냥 하염없이 무거운 발걸음같은 반면 김지운 감독의 그것은 티안나게 화장한 새초롬하고 세련된 아가씨같은 느낌이랄까. - 이래서 사람 생긴 걸로 평가하면 안 된다.

 

아무튼 그래서 꽤나 늦게 본 영화인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낚었구나'라는 느낌을 바로 받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느와르 영화가 아니다. 차라리 사랑 영화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그렇게 상정하고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수컷들의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꽤 비중있는 역할인 듯이 나오는 신민아가 영화 중반, 후반이 지나도록 얼굴 몇 번 안 내미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동기 유발'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우 고맙게도 영화 초입에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해 설명해주기까지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본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승이 말하기를 '무릇 움직이는 것은 네 마음뿐이다'"

 

그렇다. 무릇 인간이란 주관성으로 똘똘 뭉친 존재들인지라 바람이 불건, 나뭇가지가 흔들리던 개의치 않는다. 그 바람에 꺾인 나뭇가지가 자기 머리통을 치지 않은 한 말이다. 내가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가지를 보고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암컷과 수컷이 서로 한 눈에 반했다는 흔하지만 사실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들보다는 진실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즈음에 남자가 무엇에 흔들렸는지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더라도 의문은 제기할 수 있다. 총알이 나르고, 칼이 번득이고, 피가 튀는 영화가 사랑영화일 수 있느냐고. 그건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가 '질투'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컷들의 질투이기 때문이다. 수컷들이란 게 단순한 구석이 많아서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하는 수단이 현저히 부족한 종족들이다. 그래서 강도에 따라 '무시' 혹은 '싸우자!' 이 두 가지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 영화속 수컷들의 직업은 알다시피 좀 세련된 형님들이다. 일반 수컷들보다 더 단순할 수밖에 없다.

 

두번째 의문, 그건 그렇고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 한 마디 못 해보고, 그 흔한 키스씬, 베드씬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남자 주인공이 총맞아 죽는 영화의 제목이 왜 '달콤한 인생'이냐는 거다. - 물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bittersweet Life'다. 정확한 번역은 기대하지 마시라 -  게다가 심지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사랑했는지조차 불분명하지 않은가? 이건 그냥 스스로에게 반문해보면 의외로 답이 단순해진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달콤한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