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고 예전에 누군가가 내게 질문을 했었더랬다. 다른 때같으면 이런저런 이유들을 무심하게 말해주었을 테지만 그 때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얀 백짓장으로 변하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글쎄다'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
그리고도 사실 그 이후로 정말이지 꽤 오랫동안 난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 하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하나의 일치감을 느낄 수 있는 답변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단편적인 편린들 역시 꿰어야 비로서 빛이 나고 삶의 등불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2.
인간의 삶을 신을 사칭한 종교의 암울한 지배에서 건져준 것이 근대 계몽주의였지만 그 역시도 세상만사 모든 것에 대해 획일적인 선을 그어대는 우울한 시대를 초래했고, 그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준 것은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과도하게 논리를 비약한 나머지 온 인류의 숫자만큼이나 철저하게 개별적인 주관성외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론적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 내가 아는 어설픈 데모쟁이들 몇몇이 아직도 그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 간혹 정치적 설파같은 것이 튀어 나올때면 난 주저없이 비웃고 그들의 논리적 모순을 양껏 깔아 뭉개주지만 여전히 그들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 그래서 삶은 참 재미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온 세상은 인류의 수만큼이나 넘쳐 흐르는 주관성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100%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없는 한 100% 주관성이란 것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아는 몇몇 얼치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쉽게 '누가 누굴 가르치냐?'고 한다. 매우 윤리적이며 개성과 인권을 중시하는 듯한 태도인 듯 보이지만 이는 철저히 비현실적이며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인식론적으로 게으르고 싶은 발상에 불과하다. 내가 누구보다 잘난 인간인란 것은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내가 '특정 분야'에서 '특정 인간'보다 나은 인간이란 것은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즉 관계된 분야와 비교가 가능한 대상이 존재하는 한 우열관계는 충분히 판별가능한 문제다. 다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특정 부분에 국한된 것이기에 부분과 분야를 조금만 넓혀도 우열관계를 판가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뿐더러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다. 고로 인간이란 그 자체로 우열을 나눌 수 없는 단 하나의 주관성을 지닌 존재인 동시에 부분적으로 우열관계를 따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을 마구 뒤섞어서 부분적인 부문의 분별을 전체의 우열관계인 양 늘 착각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며 심지어 자본주의라는 속도전과 효율성 지상주의 사회에선 그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민주주의가 좋은 점은 바로 그 때문이다.
3.
나조차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인간인지라 '속도전', '효율', '경쟁' 이란 차원에선 다를 것이 없다. 이 가치들이 인류에게 세탁기만큼의 효용성조차도 주지 못했노라고 말하고 그것이 사실이라 믿지만 내 일상에선 자주, 어쩌면 사실상 거의 매순간 활동의 준거점으로 그것들을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것처럼.
그러니 자본주의의 공기를 호흡하면 자란 난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인간이며 그 자본주의가 내걸고 있는 가치들로 세상과 사람을 판별하려는 습관이 배어 있을 수밖에 없다. - 그래서 난 대통령이 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 결국 자본주의적 세계속에서 가장 좋은 정치 제도는 하나의 가치를 지상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그 가치아래 모든 것을 줄세우는 차별적인 정치시스템이 제 격이다. 그것은 '독재적 방식을 통한 신분제 사회의 재구성'이자 반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나이만 채우면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심신 미약을 동반하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한 표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민주주의야말로 문명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부분을 1등으로 채울 수 있는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우 쉬우면서도 심오한 인식론적 깨달음을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자본주의와 그 열렬한 추종자들은 민주주의를 끔찍히도 혐오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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