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grafia

정통성 논쟁 '블루브랜드 : 트웰브 도어스'

The Skeptic 2009. 4. 15. 02:37

무협지를 보다 보면 결코 빠지지 않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정통성 논쟁이다. 뭔 소리를 갖다 붙이건 어차피 피터지게 싸우고 한 쪽은 뒈지거나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정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꼭 '정통성 논쟁'은 하고 넘어간다. 말하자면 '정통성'이란 것이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중한 것임을 나타내는 장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정통성'이란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일까?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몇 가지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난 후라야 가능하다. 그 중 하나는 '정통'이 아니라 '교조주의'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오늘 자 뉴스에 등장한 꼴통 떠라이 탈레반 색희들처럼 굴면 그건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조주의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비록 쌀나라의 정치적 군사적 공세로부터 아랍의 정신과 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올바른 목적을 갖고 있더라도 이슬람 근본주의/교조주의라는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저열하고 치졸하며 방법에 대한 고민없이 그저 대중적으로 잘 먹히니까 사용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는 하나의 문파, 장르, 하위문화가 최초로 등장한 배경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어느 순간 언더에서 오버로 넘어갔을때 닥치는 정체성 상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언더에서 오버로 넘어가게 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고로 돈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인간들에게 그 하위문화들의 탄생 배경이나 정체성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정신적인 부분보다 그저 형식적인 참신함 (대중들이 항상 갈망해 마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러나 정작 대중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만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귤은 희수를 넘어가면 분명히 탱자가 되는 법'이다. 힙합이 쌀나라의 돈없고 빽없는 애색희들이 모여서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유희들이었으며, 악기살 돈이 없어서 버려진 턴테이블에 LP판 올리고 이리저리 긁어가며 소리를 만들던 것이 오날날 DJ의 원조다. 가난한 동네에서 시작된 음악이기에 가난한 자들의 이이갸기를 담고 있고, 음악적 기교를 부릴 재주가 없기에 맨 입을 악기삼고 가사가 가장 큰 무기였던 것, 그것이 힙합의 탄생 배경이다.

 

비록 쌀나라나 우리 나라나 그 가난한 자들의 분노에 찬, 혹은 서러운 외침이 그저 값비싼 클럽과 욕정에 물든 청춘들의 쌍쌍파티를 위한 최적의 음악으로 전락했다고 한들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래도 누군가는 그것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정신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돈이 명성을 낳고, 권력을 낳으며 심지어 인간까지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전히 '기억투쟁'을 벌이고 있는 그들이 쌍쌍파티를 욕하지 못할 이유 역시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런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앨범의 제작 및 프로듀서를 도맡은 작곡가 김건우가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훔피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겨 화제를 낳고 있다. 김건우는 미니홈피에 "'블루브랜드'의 참여 아티스트들의 리스트가 공개되고 난 후 일부 참여 가수들에 대한 몹쓸 비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 참 가슴이 아프다"며 "비판을 하는 그들은 과연 그 아티스트들의 피나는 노력을 알까.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무차별적 비난이 문제"라고 항변했다. 김건우는 또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며 운동이나 공부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의 역할"이라며 "(힙합의)정통성을 외치는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몹쓸 비판"이란 결국 "그 아티스트들의 피나는 노력을 몰라줘서"일 것이다. 글쎄다? 난 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모른다. 그렇다고 갸들에 비해 다른 가수들이 덜 노력할 것이란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때 작곡가 김건우란 사람이 하는 말,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무차별적 비난"이란 지적은 완전히 본질을 벗어난 헛소리다. 이 논쟁의 본질은 정통성과 정신에 관한 부분이지 가수 개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MC몽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 인기 연예인이 되었다고 보진 않는다. 인맥을 열심히 쌓든, 음악을 열심히 했든 그만한 노력을 기울였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부정할 사람 별로 없다. 그러나 그 개인적인 노력과 힙합의 정통성/정신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감정에 호소해서 논점을 흐리지 마라. 

 

"(힙합의)정통성을 외치는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힙합의 정통성을 외치면 외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야 하는 것이 정상아닌가? 특히 요즘처럼 살기 팍팍해지고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런데 위의 글을 보면 김건우란 작곡가는 힙합의 정통성을 외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불행히도 이 말은 그 자체로 이미 정통성을 벗어난 힙합은 음악을 듣는 이들의 삶과 완벽하게 유리된 채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그저 일회용 '페스트(오타 아님) 푸드'처럼 즉흥적으로 소비되는 것으로 전락했음을 고백하는 발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성을 얻어가는 과정이란 것이 매우 위험한 외줄타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앨범을 기획하고 있다는 작곡가의 말을 들어 봐도 여전히 힙합의 정통성과 정신의 중요함을 역설하며 욕을 퍼부어 대는 이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어설픈 감상을 통해 논점 흐리기를 시도하도록 반응을 이끌어 내지 않았는가? 물론 그 어설픈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지만. 난 대중성을 추구하는 행위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별 의미없는 삶의 조각들을 과대포장하거나 겉만 살짝 핥아보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대중성을 얻고자 하는 움직임엔 반대하는 편이다. 그것은 팬덤에 대한 기만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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