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grafia

때는 바야흐로 환절기

The Skeptic 2009. 9. 24. 02:31

유전학적으로 따져볼때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지고 보니 요즘처럼 일기가 변화무쌍해지는 이른바 환절기가 되면 몸도 마음도 아련한 미지의 시공간을 따라 달뜬듯이 움직이기 보다는 지나온 구체적인 기억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렇다고 그 구체적인 기억들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는 것 마냥 선명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두뇌가 냉철한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휘둘리는 것인 한 그럴 수 밖에 없다. 

 다가올 시간들과 그 시간속의 새로운 사건들, 사람들에 설레여 하거나 혹은 살짝 불안해 하는 것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자들의 특권일 것이다. 그 반대의 사람들에겐 낡은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같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얕은 한숨을 지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회한이라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이 'Bravo My Life' 라 노래했던 것처럼 그동안 견뎌온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뿌듯함, 대견함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즈음이면 더위탓에 밀려났던 헤드폰을 만지작거릴 시기다. 그리고 낡은 엠삼에 새롭게 채워넣을 노래들도 다시 고르게 된다. 그리고 느끼는 것은 나역시 애잔한 과거의 시간들을 추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환절기가 아니라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날이거나 비오는 날에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날이며 어김없이 예전에 듣던 노래들을 찾게 된다. 

우스운 것은 그 당시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거나 혹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노래들이 더 잘 기억나고 더 마음에 와닿는다는 것이다. 내 10대와 20대는 팝송이 지배했던 시기였음에도 부르스나 부르스 느낌이 강한 초기 락스타일은 그리 선호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그 시절 즐겨들었던 팝송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반면 부르스와 부르스 기타의 음색은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현재란 시간속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나란 존재는 그 옛날의 나와 같은 존재일 수가 없다. 그 어떤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결국 현재란 관점에서 호출되고 새롭게 해석된다는 관점이 옳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 산타나를 불러내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히식스나 신중현, 김추자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구해 듣기가 팝송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해야 하며 낡은 모든 것은 부수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것만이 진정한 변화이고 발전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천박함이 가져운 개인적인 불행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당시의 천박함보다 지금이 나아졌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산타나의 Revelations가 무지하게 끌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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