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정치적 과잉 상태'

The Skeptic 2010. 5. 21. 01:19

'정치적 과잉 상태'

 

사실 쉬운 개념은 아니다. 그래서 또 수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메이저 언론조차도 이 의미를 아주 엉뚱한 곳에다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아주 쉽게 '정치적 관심이나 이슈가 너무나 많은 상태'라는 식의 정의를 갖다 붙인다. 그러나 이건 아주 잘못된 설명이다. 정치적 이슈가 많은 건 정치 자체가 너무나 후져서 그런거지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정의를 은연중에 확산시키는 것은 후진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비난을 얼버무리겠다는 권력과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정치 과잉'의 의미는 모든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판단을 정치적 잣대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의 근간이라고 할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를 비타협적인 순수성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종교적 믿음'이란 의미다. 좌파든 우파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간에 현실에서 종교적 순수성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도 필요에 따라 사회주의적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하며 그 반대 관계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이념적 측면보다는 필요에 따라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개의치 않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란 의미다.(주1) 

 

그러나 정치적으로 과잉된 사회에선 이런 것을 '종교적 불경'쯤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게 존재한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그 힘으로 불공정한 시스템을 강요하는 제국주의 국가라고 믿을 순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영어를 쓰면 안 된다고 강요할 순 없다. 구쏘련은 사회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전체주의 국가에 더 가까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Red Army Choir의 노래(주2)를 감상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순 없다. 왜?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영어의 사용과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으며 전체주의 국가인 구쏘련과 붉은 군대 합창단의 웅장한 노래를 하나인 양 착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라면 남조선의 근대사가 이런 '정상적인 성인'이 나타나기엔 너무나 척박했으며 지금도 이념이나 사상의 스펙트럼은 협소하기 그지없다는 거다. 객관적인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실 비난하거나 욕하기도 참 그렇지만 그렇다고 서로 위로하며 지나갈 수도 없다. 정치나 이념, 사상의 지형이나 범위란 게 한 번 고착화되어버리고 나면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가장 먼저 깨져야 할 것이 바로 이 '정치적 과잉'상태다. 

 

  

주1)

실용주의를 자본주의 정도로 착각하는 이들이 꽤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죄박이가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되지도 못했을 거다. 강조하자면 실용주의란 이념이나 사상의 잣대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르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고 보수든 진보든 이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스스로의 이념이나 사상같은 것없이 그저 자신들과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좌빨, 유색인종, 이주 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등등을 공격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극우 파시스트들은 예외다. 이들은 몰상식 그자체니까. 

 

주2)

로우틴 아이돌 그룹들의 비슷비슷한 유행가에 질리고 찢어지는 일렉트릭 기타 소리의 전자음이 거슬릴때 간혹 붉은 군대 합창단과 볼쇼이 합창단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웅장하고 장중한 그네들의 노래는 사람을 경건하게 만드는 한편 축 처졌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볼쇼이 합창단의 인터네셔널가와 붉은 군대 합창단의 구쏘련 국가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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