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와 '목적' - Part 1.
일본에서 중학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를 강행할 예정이란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 착각하는 게 있다. 바로 '국정 교과서'와 '검정 교과서'의 차이다. '국정 교과서'는 교과서를 만드는 주체가 국가다. 따라서 '국정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은 사실상 그 국가의 가치관 혹은 당시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특정 정치세력의 가치관인 경우라고 봐도 무방하다. '검정 교과서'는 민간에서 교과서를 만들고 그 내용에 대해서 국가가 승인을 해주는 방식이다.
난 '국정 교과서' 세대다. 그래서 국정교과서의 폐해에 대해서 잘 안다. 말하자면 이제는 극장에서 사라진 '대한 뉘우스'같은 것이다. 오로지 국가권력을 독점한 지배세력의 일방적인 견해를 전달하던 대한 뉘우스와 국정 교과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검정 교과서'다. 민간에서 편찬하고 내용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국가에서 수정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극단적인 경우엔 인정을 안 해줄 수도 있지만 사실 교과서 편찬하는 이들이 그렇게까지 당대의 주도적 가치관을 거스르는 내용을 실을리 없다는 점과 그런 내용으로 검정을 통과한다고 한들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할 확률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무리한 내용은 수록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중학 교과서 검정이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당대의 가치관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한' 국가는 대개 인정해준다. 그런데 그 교과서들중에 독도가 일본의 것이란 내용이 들어간 것들이 늘어났다. 결국 독도는 일본의 소유라는 것이 현재 일본의 가치관으로 볼때 큰 문제가 안되는, 무리한 수준의 내용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물론 최종적으로 그런 내용의 교과서들이 실제로 얼마나 교과서로 채택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변수지만 어찌 되었든 1차적으로 그런 내용을 담은 교과서들이 증가한다는 추세만으로도 독도와 관련된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선 좋을 것이 없다.
물론 그에 앞서서 더 알아봐야 할 것은 그런 교과서들이 늘어나는 게 일본 극우파들의 고도화된 전략의 일환인가 하는 점이다. 독도 문제는 일본 극우파들에게 북한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이슈다. 대한민국의 극우파들이 북한과 일본을 매개로 거짓된 애국심 마케팅을 펼치는 것처럼 일본 극우파역시 독도와 북한을 핑계로 왜곡된 애국심 마케팅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큰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게 참 잘 팔린다는 거다. 철든 이후로 난 그걸 산 적이 없는데 누군가 내 몫까지 다 사는 모양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일본을 규탄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 내 특정한 정치집단을 규탄할 것인지 하는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규탄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속으론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제로섬 상황까지 가정한 충돌을 전제하지 않는 이상 국가를 규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아무튼 내 예상으론 분명 검정 발표를 할 것이다. 발표하면 외국과 문제가 발생하지만 안 하면 당장 국내에서 반발이 일어난다. 외국인들이 일본 정치인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외국보다는 내국의 여론이 정치인들에겐 중요하다.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건 '발표했다'는 그 자체지 독도가 누구의 것이냐는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독도 소유권 문제는 사실상 한일 양국의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이슈와 정치적 영향력 확대라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정치인들 중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가진 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바라는 소수의 정치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인들에게 독도는 그저 국민들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정치적 꽃놀이패에 불과하다. 그런 관점에서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상 일본의 흔들기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시각은 옳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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