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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을 이해하는 방법

The Skeptic 2011. 5. 27. 15:45

김기덕을 이해하는 방법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칸에서 상을 받았단다. 이런 소식은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오! 그래 축하! 축하! 그런데 영화는 어떤 건데?' 그렇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지만 정작 일반적인 한국의 영화관객들은 왜 상을 받았는지 잘 모르며 심지어 상을 받은 그 감독의 영화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른다. 사실 칸에서 상을 받든 베니스에서 받든 상관없이 상을 준 그 나라의 관객들도 그 감독들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만. 

 

그렇다고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라고 모두 다 대중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류의 영화들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답은 단순하다. '주관성'이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주관성이 강한가하는 것이다. 강하면 강할수록 대중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주관성에도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난 김기덕 감독보다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이 차이는 또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현실에서 주관성이란 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특정한 사건이나 사물을 접했을때 그것을 해석해내는 방식이다. 즉 모든 인간은 주관성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렇게 주관적인 존재인 우리가 특정한 시각을 일러 '주관적이다'라고 부르는 경우는 '대중화된 주관성', 즉 '일반성'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다. 부언하자면 '대중화된 주관성'이란 '일반성'이란 점에서 볼때 '객관성'과도 거리가 있다. 두번째 경우는 사실 주관성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즉 특정한 사건이나 사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인데 이런 극단적 주관성은 '비현실적 가치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사실 이런 언급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을 굳이 입에 담는 이유는 불행히도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기 때문이다. 즉 언급한 두 가지 경우중 전자는 주관성의 일반적인 존재 형식이고 후자의 경우는 매우 부정적인 존재방식인 셈이다.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예술 작품은 어찌 되었든 주관성의 산물이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일반적인 언어와 형식으로 구현해내는가에 따라, 즉 형식에 따라 일반성, 대중성이 담보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홍상수의 작품은 지루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일반성을 담보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김기덕의 그것은 애시당초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만약 김기덕이 대중성에 대해 나름대로 신경을 썼고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 나온 그의 영화작품들이라면 결론은 달라진다. 그는 '대중화된 주관성'이란 시각에서 볼때 상당히 거리가 먼 주관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중화된 주관성'이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예술가라는 직업군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성향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제일 난감한 것은 그 자신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는 경우다.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이 칸에서 상을 받았다지만 영화의 내용이 매우 논란이 될만한 것이어서 국내 상영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그리고 그간 내가 보아온 그의 영화들로 미루어 보건데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뭐 그렇다고 이제 와서 김기덕 감독을 붙잡아 앉혀놓고 구구절절이 설명을 할 것도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다만 내가 궁금한 건 칸은 대관절 그런 주관성으로 똘똘 뭉친 영화의 어떤 점에 공감을 한 것일까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