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경제정책과 복지정책

The Skeptic 2011. 6. 29. 23:43

경제정책과 복지정책

 

그리스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문득 궁금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이미 이전에도 잠깐 확인했던 바지만 정말 유난히도 그리스의 방만한 복지정책을 질타하는 기사나 논평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지금 우리 나라에서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각종 복지 정책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동원된 수법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경제정책이 우선인가? 복지정책이 우선인가?" 상식적인 수준의 답은 '경제 정책이 우위다'이다. 복지, 그것도 <자본주의적 질서속에서> 시행될 복지 정책의 중요한 요소는 분명히 재원 조달이다. 반면 자본주의적 경제 시스템이 중심이 아닌 국가에선 어떻게 될지 명확치 않다. 

 

조금 무리해서 단순화시키자면 어느 집에서 소비를 하는 경우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태다. 물론 특수한 상황에선 그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나서 큰 집이 필요한데 당장 집 살 돈이 없다면 빚을 지고 주택을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역시 빚을 지는 이가 장기적으로 갚을 능력이 된다는 계산이 서는 경우이며 빚을 주는 쪽에서도 그런 담보를 잡고 내주는 것이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균형재정이란 것이 절대시 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리한 수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면 균형재정 상태가 가장 좋긴 하다. 복지정책을 위한 지출이 많다면 그만큼의 조세 수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는 법인세를 인하하고 심지어 친족간의 상속세마저 폐지하는 해괴한 짓을 저지른다. 조세 수입은 줄어드는데 복지지출은 늘어난다. 당연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욕을 먹어야 하는 건 무개념으로 국정을 운영한 그리스 정부다. 단지 복지정책의 문제로 돌릴만한 간단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신문지나 논평들이 더 고약스러운 것은 이것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칭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도 방만한 국정운영이란 문제를 단지 복지정책의 문제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꼼수가 숨어 있다. 복지정책을 단순히 좌파의 전유물이라고 단정짓는 결정론적 자세도 웃기지만 단지 복지정책을 시행했다는 이유로 좌파 포퓰리즘이라 부르는 것도 우습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의 좌파정권들 중 감세를 중심에 놓는 정권은 없다. 감세와 복지 확대 정책을 양립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하'에선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즉 감세를 추진하는, 그것도 상속세마저 폐지하는 좌파란 실상 좌파라 보기 힘들다.

 

지금은 정치적 실체로선 많이 사라졌지만 사회주의가 확대되던 시기엔 '상속'자체를 범죄시하는 좌파들도 많았다. 가족을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체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집단이란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바라본다면 사실 상속만큼 완전한 불로소득도 없으니까. 때문에 일반적으로 좌파는 우파에 비해 상속과 같은 불로소득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부정적이며 그런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 요율 역시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리스의 지하 경제 수준이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의 평균보다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탈세와 직결될 뿐 아니라 좌파가 지하경제를 그렇게 큰 폭으로 용인한다는 건 사실 상상하기 힘들다. 지하경제가 정상적인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계획경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쯤에서 조금 의아한 것이 있다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나 '지하경제 배제'와 같은 정책적 수단은 단순히 좌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점이다. 정상적인 자본주의자라면 찬성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그리스 정권을 좌파 포퓰리즘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포퓰리즘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좌파라 부르는 건 무리라고 보이며 심지어 난 포퓰리즘도 아니라 그냥 여러 모로 무능한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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