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최근에 광고를 하나 봤다. 안성기가 등장하는 현대 중공업 광고다. 현대 중공업, 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 기업이다. 그런데 그룹 회장님께옵서 정치인되시고 총선도 맞물려 있다보니 갑작스레 기업 홍보 광고를 시작하신 게다. 그 광고에 이런 대사들이 등장한다. '총 매출의 90%를 수출하고, 본사와 공장이 지방에 있으며, 근속연수가 20년에 가까운' 언뜻 들으면 참 좋은 기업같다. 그런데 이게 사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총 매출의 90%를 수출하고'
수출, 아직도 남한의 많은 사람들은 '수출'이란 단어를 들으면 애국이란 단어와 동일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경제학적으로 볼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뒤집어 반문해보자. 수출이 아니라 내수에 치중하는 기업은 매국노인가? 그렇지 않다. 수출을 하든 내수를 하든 기업일 뿐이다. 오히려 요즘은 지나친 수출위주의 경제구조가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즉 수출을 하든 안 하든 많이 하든 적게 하든 그것이 '애국' 혹은 '옳은일'이란 의미로 받아들일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는데 아직도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은 아니다.
'본사와 공장이 지방에 있으며'
당연한 이야기다. 현대 중공업의 주 사업분야를 보자. 조선, 기계, 플랜트, 건설 장비같은 사업을 한다. 그야말로 중공업이다. 중공업을 주로 하는 기업체의 생산공장이 서울에 있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이건 앞뒤가 뒤바귄 이야기다. 즉 기업의 속성상 어쩔 수 없이 생산시설을 지방에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데 뒤늦게 그것이 마치 그 기업이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에 생산 시설을 지은 것인 양 떠드는 거다. 말은 그럴듯 하지만 결국 개구라인 거다.
'근속연수가 20년에 가까운'
이것 역시 당연한 이야기다.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숙련공이다. 그리고 이런 숙련공의 가치는 제조업이 가장 크며 그중에서도 중공업일수록 더 중요하다. 즉 얼마나 많은 숙련공을 보유하고 있는가가 기술력의 차이가 되고 생산성의 척도가 되며 기업의 효율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거다. 근속연수가 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최근 벌어진 한진 중공업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숙련공을 이용한 생산성 향상보다는 그저 임금을 줄여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대세다. 현대 중공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광고에선 근속연수를 자랑하지만 현대 중공업 노동자들 중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얼마인지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광고란 기본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그 자랑질의 이면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침묵한다. 다른 광고들도 비슷할 거다. 그런데 내가 유달리 이 광고가 거슬리는 건 조잡한 말장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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