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앞선 글에서 이런 글을 썼다. 글의 문맥상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지만 미안하게도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몇 번인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언어란 대상과 언어가 1:1로 대응하는 명료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까 토끼란 짐승이 토끼란 이름으로 불려야만 할 결정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
부추란 야채가 있다. 어떤 지역에 가면 정구지라고 부른다. 그 지역의 말을 전혀 모르는 이가 그 동네에 가서 음식점엘 들어갔는데 아주머니가 '정구지 넣어줄까?'라고 물으면 그 지역 출신이 아닌 손님은 당연히 '정구지가 뭐지?'라고 생각할 거다. 그렇다고 아예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식당 아주머니는 정구지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각종 지식을 총동원할 것이고 어느 순간 손님 역시 정구지가 부추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단어와 대상이 1:1로 명료하게 대응하는 관계라면 이런 식의 의사소통 실패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알겠지만 이런 식의 의사소통 실패는 너무나 빈번해서 신기하지도 않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의사소통 실패와 기나긴 우회로를 거친 의사소통의 성공이 이루어지는 걸까? 그것은 바로 단어는 서로 다르지만 부추라는 야채의 특성에 대해선 서로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단어 자체보다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의 특성에 대해서 사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현상이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떤 사건을 바라볼때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 경험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즉 사건은 단일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지식이나 가치관은 여럿이고 꼭 그 지식과 가치관의 숫자만큼 다양한 해석과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과정 역시 순식간에 일어난다. 때문에 실제론 두 개의 사건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사건' 그 자체와 '가치관이 개입한 사건' 즉 '가치판단'이다.
남한에서 수많은 수구 꼴통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진중권이 그렇게도 '팩트'를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사건'과 '가치판단'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지적을 받으면 금방 알아차린다. 문제는 남한의 수구 꼴통들은 그런 능력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과 광신도의 행태가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다.
현상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미안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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