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Media

박민숙이 괜찮은 사람인 이유

The Skeptic 2012. 7. 17. 03:07

불행한 이야기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최근 정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 그 정체나 방향성같은 건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 난무하는 이야기들중 일부에 따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제 아무리 갑부라고 해도 목숨까지 살 수는 없다. 인간의 과학 기술이 아직 그렇게까지 발달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사실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괜찮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인생살이 대부분을 맹목이나 열정보다는 무난한 처세로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이 원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돈만 있으면 얻을 수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건 비단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고래로 있는 자들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 역시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자주 강조하는 바지만 있는 자들이 모여서 모종의 커넥션을 구성하면 자신들이 사실상 돈이나 권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조차 돈이나 권력으로 얻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도록, 그러니까 그렇게 무언가를 얻는 것이 당연한 것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게다가 돈이 아주 많다는 것이 주는 다른 잇점들도 많다. 그건 바로 자존감을 지키기 쉽다는 의미다. 알만한 사람들을 다들 아는 일이겠지만 돈이 없으면 자존감도 유지하기 힘들다. 평생을 찰딱서니로 살았다는 어느 화가 수준의 정신상태를 유지하거나 중들과 중생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 스님과 같은 인물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없이 자존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더 심각한 건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건 사실상 한 인간이 무너지는 것이란 사실이다. 그런 중요한 자존감을 지키는 데 돈이 필수적인 세상이라는 거 그게 불행인 거다. 


신사의 품격에 이정록의 도도하고 돈많은 아내로 등장하는 박민숙이란 캐릭터가 꽤나 괜찮은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냉정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적 감정에 이끌려 모른체 하며 받아줄 만한 일도 그렇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사정을 봐주기는 하지만 알량한 동정심도 아니고 심지어 그런 의미의 발언들이나 요구에 대해선 냉정하게 거절할 줄도 안다.(장담컨데 이런 인물 극히 드물다. 사람이라면 응당 저래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이런 인물 구경한 기억 별로 없을 거다) 물론 그런 성격도 애시당초 그런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만큼 돈이 많아서일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박민숙은 꽤나 괜찮은 캐릭터일까? 불행히도 현실에선 돈도 많으면서 제대로 된 자존감까지 갖춘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저 그렇고 그런 드라마들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저 돈만 많고 성격적으로나 인격적인 면에서 치명적인 흠결을 갖춘 이들이 세상엔 훨씬 더 많다. 단지 태어날 때부터 입에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것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양 까부는 재벌들이 허다하고 남들은 다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어겨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비굴한 인간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 돈있고 권력은 있을지언정 자존감은 바닥인 인간들인 거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돈과 권력에 무릎을 꿇는 것을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거나 혹은 그걸 알더라도 그런 상황을 이용하려고만 들지 스스로가 그 이상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같은 건 없는 거다. 어느 쪽이든 자존감과는 거리가 먼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박민숙이란 캐릭터는 그런 걸 보여준다. 게다가 있거나 없거나 그렇지 못한 인간들에 대해서 입바른 소리까지 해댄다. 꽤나 괜찮은 캐릭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돈있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상대하는 게 아냐. 돈으로 상대하는 거지"

"잘 봤니? 이게 앞으로 네가 나올 세상이야. 돈없는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고"


분명히 고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그다지 좋은 가르침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거다. 이 묘한 조화가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박민숙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나아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세상이 어떤 곳이라는 것은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거다.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다. 골썩은 물먹고 갑자기 득도한 양반도 있다지만 사실 그렇게 한순간에 모든 걸 깨달았다는 건 개구라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이른 아침 목이 너무 말라 마신 물이 하필 골썩은 물이란 상황이 그 깨달음을 뻣속깊이 각인시켜준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노력없이 한 순간에 무언가을 이룬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세상살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그걸 갑자기 깨달을 순 없다. 책을 읽거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진 않았더라도 적어도 그에 대한 고민은 남들보다 월등히 많이 하지 않았다면 그런 깨달음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단계엔 분명히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알아야 하는 계단도 존재한다는 거다. 물론 단지 그 계단이 옥상인 줄 알고 머무른다면 그저 그렇고 그런 얄팍하고 속보이는 처세론자로 머무를 테지만 말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냐?'라는 반문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을 잘 안다고 믿는 경향들이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세상을 잘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상위 1%가 금융자산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나라이자 재벌이 부당한 특혜를 받고 있는 나라에서 극단적으로 재벌을 옹호하는 죄박이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되지는 못 했을 거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서 군사쿠데타를 '바른 판단'이자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박그네가 국회 제 1당의 사실상의 맹주이자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야 정상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현상이 현실을 잘 알아서라고 대답할 사람들도 있을 거다. 어차피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그렇게 살아가거나 그 쪽에 줄을 대지 않는다면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지 않겠는가란 생각도 가능하니까. 함정은 그게 바로 착각이라는 거다. 그렇게 해서 잘 된 경우 본 적 있는가? 봤다면 그게 확률적으로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그 확률에 당신이 속할 가능성은 또 몇이나 될까? 그건 마치 로또와 같은 거다. 누구나 당첨을 꿈꾸며 사지만 실상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그런 것 말이다. '기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세상을 잘 안다는 말은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