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걱정마시라.

The Skeptic 2012. 12. 18. 23:16

대통령 선거가 내일이다. 그리고 누가 당선되었을 지는 내일 자정즈음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확 달라져 있을까? 아니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 5년동안 세상이 확 달라지기는 할까? 아닐 걸.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하고 그 달라진 세상을 받아들일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남한의 대통령 선거구도를 보자. 유력한 대선 후보중 한 명은 독재자의 딸이자 죄박이 정권하에서 사람들을 삶이 파탄나는 동안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이미지 지키는데 급급했던 안일하고도 이기적인 인사이며 다른 한 명 역시 합리적 보수라고 볼 수는 있으나 지금 남한이 처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만한 주장을 펼치는 이는 아니다. 심지어 상당히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불리웠던 이조차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니다. 


이게 지금 남한이 처한 현실이다. 누가 되든 세상이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단기간에 확 달라지기 위해선 사실상 재난, 혹은 그런 수준의 대형 사고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지진이나 화산폭발같은 대형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원자력 발전소가 모두 폭발하거나 혹은 IMF보다 더 강한 수준의 금융-경제위기가 도래하거나 말이다. 이런 재난이 일어나면 단기간에 세상이 확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재난이 벌어지고 난 이후의 세상은 재난 이전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란 점이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에 대처하는 행동 모두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그것에 대처하지 못 하는 존재는 도태되는 거다. 


두번째는 재난이란 사건이 가지는 영향력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휘된다는 점이다. 즉 대부분의 사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난이전의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란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 들 것이다. 그것도 거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말이다. 


바로 이런 두 가지 특성, 완전히 새로운 세상의 도래와 누구도 피해가기 힘들다는 무차별성으로 인해 재난 혹은 그 수준의 사건이 발생한다면 세상은 단기간에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지적이고 협소한 재난에 대해서 사실상 무감각하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일이 아닌 거다. 24시간 돌봄 서비스가 지원되지 못한 중증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했다. 정상인이라면 고작 몇 걸음만 걸어가기만 해도 살 수 있었을 그 거리를 이동하지 못 해서 말이다. 장애를 가진 동생과 그 동생을 돌보던 누나 역시 그와 같은 비극을 맞았다. 언론에선 난리를 피우고 뉴스를 보는 사람들도 혀를 차지만 정작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극도로 적다. 왜 내 일이 아니고 내 가족의 일이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참으로 무모하게도 자기에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착각을 한다. 장애인의 대다수가 후천적인 사고로 인해 장애를 안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단순하다.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상식적인 수준의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불학무식한 소리인지 알 거다. 내가 각종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아도 그 선거에서 당선된 이의 의도에 따라 세상은 굴러갈 것이고 나는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을 한다고 해도 다른 차가 내 차를 들이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재수가 없으면 난 남은 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대가리를 모래에 파묻으면 자기가 안 보일 거라고 믿으며 사는 거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인간은 매우/극히 드물다. 부처는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지만 정작 현실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부처가 되기위한 길을 가기보다는 부처에게 신통력으로 나 좀 잘 살게 해달라고 조르는 우상숭배자가 되는 길을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다. 



p.s.

재미있는 건 만약 오늘 내가 투표하지 않을 사람이 당선된다면 그 후보자의 주장과는 반대로 세상은 거의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건 내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사소한 불행이나 비극에 대해선 나 역시 '내 일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도 무방할 정도의 능력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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