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내가 투표를 한 이유

The Skeptic 2012. 12. 20. 01:32

"형, 형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체 왜 투표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투표를 통해서 누가 되는 세상 크게 달라질 일은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고 그 주장을 들은 후배 하나가 이렇게 물었더랬다. 하긴 누가 들어봐도 국가의 권력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 투표를 통해서도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사가 이 추운 날 굳이 걸음을 옮겨 투표장에서 근 한 시간여를 기다려 투표를 마치고 나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긴 했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큰 변화'라는 것 자체가 허망한 기대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큰 변화'가 아니라 '사소한 변화'를 위해서라도 투표는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투표를 해야만 하는 그런 '사소한 이유'가 있다. 


두 군데에서 블로그를 운영한다. 처음엔 서로 다른 주제와 소재들로 운영해보려고 했었으나 이래저래 시간이 나질 않아서 그냥 두 블로그 모두 같은 글이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두 블로그는 글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 잇다면 두 곳의 블로그 모두 제목이 같다는 것이다. 'Don't Panic' 영화와 관련된 내 글에도 인용한 바가 있지만 난 이 글을 '쫄지 마라'로 해석하는 편이다. 그런데 대관절 왜 그런 제목을 단 것일까? 


사실 거창한 이유없다. 그야말로 '쫄지 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쫄지 않을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들어와 볼 때마다 새삼스럽긴 하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런 제목을 달게 된 이유는 죄박이 정권 이후로 사실상 인터넷에 대한 제재조치들이 현격히 늘어나면서부터다. 고작해야 쥐그림 그려서 공공시설에 부착한 이가 있다. 제 아무리 죄가 된다고 하더라도 기물손괴죄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이를 마치 역모라도 꾀한 죄인인 양 취급한다. 이것이 죄박이 정권 내내 이루어진 일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는 바로 '말 좀 하고 살자', 즉 표현의 자유인 거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야 이 세상 어딘가에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당하며 살고 있고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혹은 부당한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말조차 할 수 없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밑바닥부터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지난 5년간 벌어진 일은 시간을 거슬러 '빨갱이 마녀사냥'이 판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내가 블로그 대문에 'Don't Panic'이라 쓰고 '쫄지 마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이유이며, 큰 변화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미망인가를 주장하면서도 꾸역꾸역 투표장으로 향한 이유기도 하다. 아직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적어도 앞으로 5년정도는 내 블로그의 대문 문패가 바뀔 일은 없을 것 같다. 



p.s.
그래도 나름 이번 선거에서 성과도 있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기륭전자에서 노조활동하며 오랜 시간동안 농성을 벌여온 진짜배기 노동자가 대통령 후보자로 나오고 비정규직이어서 임금을 비롯한 각종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리던 청소 노동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세상을 접해 보겠는가?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그건 성과라고 볼 수 있다. 

p.s.2.
다른 거? 다른 거 뭐? 다른 성과? 이번 선거에 그런 것 말고 다른 성과라는 게 있나? 저번에도 강조했지만 이번 선거 역시 '빨갱이 마녀 사냥'과 북한을 적대시하기만 하면 안보가 지켜진다는 식으로 호도된 안보관, 그리고 재벌 위주의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식의 망상이 기본적인 사실과 상식을 누른 선거였다. 그런 선거에서 무슨 다른 성과같은 것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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