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한국 시리즈 5차전.

The Skeptic 2013. 10. 30. 00:21

일단 결과는 라이온즈의 승. 


"총력전"


굳이 어떤 상태에 있는 팀이 사용해야 하는 전술이란 규칙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고 느낀 팀이 사용하면 된다. 그래도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경향이란 건 있다. 주로 마지막에 몰린 팀이 사용하는 전술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라이온즈가 윤성환-안지만-밴덴헐크-오승환, 즉 이번 한국 시리즈들어 가장 믿을만한,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실상 라이온즈 투수력의 전부를 쏟아부은 건 당연한 선택이다. 심지어 가장 적게 던진 투수가 23개의 오승환일 정도로 대부분 전력투구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반면 베어스는 노경은에 이어 김선우-윤명준-정재훈-홍상삼-김명성-오현택이 이어 던지는 다소 소극적인 투수 기용. 사실 이 정도 투수물량이면 모든 투수가 1이닝에서 2이닝 안팎을 이어던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 특히 기자들조차도 이에 대해 승리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평을 내놓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미안하지만 이건 아주 정상적인 투수 기용이다. 만약 노경은이 4회에서 5회정도를 투구하면서 투구수 100개에 도달했는데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유희관이 등판했을 것이다. 굳히기에 들어간다는 계산하에서 전술을 운용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승리조가 아닌 추격조가 가동되는 건 당연한 수준이다. 단기전이고 마지막을 향해 간다는 생각때문에 이 단순한 사실을 잊는 경향이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라이온즈의 투수기용이 비정상적인 것이지 베어스의 투수기용이 이상한 건 아니다. 


게다가 베어스는 졌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다. 남은 두 경기중 한 경기만 이기면 된다.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라이온즈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하루 휴식일이 끼어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라이온즈는 주력 투수들을 혹사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테이션상 밴덴헐크가 선발로 등판해야 하는데 오늘 경기에 나왔다. 물론 선발 투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구수가 그리 많은 건 아니다. 6차전에도 선발로 등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은? 별 수없이 차우찬이다. 안지만과 오승환도 대기해야 한다. 그런 투수기용을 통해 승리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은 또 누가 나와서 막는냐는 거다. 첩첩산중인 거다. 


반면 오늘 경기는 졌지만 어쨌든 베어스는 유희관을 아꼈고 니퍼트도 대기중이다. 만약 오늘 경기에 베어스가 총력전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비록 예상이지만 동점 상황에서 유희관이 등판해서 위기 상황을 넘기고 버텨줬다라면 8회 2실점하지 않은 채 연장전에 돌입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안지만의 뒤를 이어 나온 밴덴헐크와 오승환의 투구 수를 확실히 더 늘릴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주 행복한 상상, 내가 간혹 하는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이란 상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단순히 정상적인 투수 기용이란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리즈 전체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접근해야할 문제다. 선택권이 없는 라이온즈의 전략은 너무나 명확하다. 공격이란 면에선 깜짝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비에선 그럴 수가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경기에서 라이온즈는 가능한 한 모든 투수력을 동원하려고 들 것이다. 결국 베어스는 그런 라이온주의 전략을 파고들어 '미스 매치업'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유희관의 불펜 투입은 이기지 못 한다면 사실상 카드 하나를 그냥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잇다. 6차전 선발 등판이 가능한 유희관을 소모함으로서 니퍼트가 6차전 선발로 나서야 하며 만약 그 경기마저 내준다면 베어스는 라이온즈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최종전을 치러야 하는 셈이다. 한 경기를 버리면서까지 이런 구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리드하고 있는 팀의 특권인데 굳이 그런 특권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총력전은 남은 두 경기중 한 경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베어스는 남은 6,7차전에서 일단 선발 투수만 놓고 보면 훨씬 더 안정감있는 운용이 가능하다. 베어스로선 경기는 졌지만 라이온즈의 주력 투수들을 모두 소진시켰다는 점에서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라이온즈는 주력투수들을 혹사시킬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상황은 베어스에게 유리하다. 


다만 오늘 경기에서 변수로 등장한 것이 있다면 바로 타격이다. 최형우가 돌아왔다. 라이온즈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늘 경기의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타선의 흐름을 끊는 역할만 하던 선수가 드디어 제대로 된 4번의 역할을 해준 것이다. 만약 최형우가 살아나고 시리즈 내내 잘 해주고 있는 채태인과 박석민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막판 대역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베어스 역시 오늘 경기에서 비슷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앞선 두 경기에서 그다지 좋은 타격을 선보이지 못 했던 베어스 선수들이 오늘 경기에선 꽤 괜찮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다만 라이온즈의 투수, 콕 집어 말하자면 밴덴헐크와 오승환이 너무 잘 던진 것 뿐이다. 



p.s.

간혹 포스트 시즌 기간동안 내가 타자들의 타격감이 괜찮다는 말을 하면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는 있다. 시즌중의 타격에 비하면 확실히 처지는 편이니까. 그런데 그건 오해다. 장기전인 시즌과 단기전인 포스트 시즌은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분명한 차이는 바로 투수기용이다. 장기 레이스에선 버릴 경기는 버리고 가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경기에 신인급 투수들을 기용하여 테스트를 해볼 수도 있다. 


반면 단기전인 포스트 시즌은 다르다. 그 어느 팀도 시즌처럼 5선발이나 6선발 체제를 운용하지 않는다. 많아봐야 4선발이고 일반적으로 3선발이다. 즉 포스트 시즌에 등판하는 투수들은 기나긴 시즌을 거치면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상위 4팀의 에이스급 투수들인 것이다. 즉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최상위권의 투수들이란 의미다. 그런 투수들을 상대로 시즌과 똑같은 타격성적을 내야 한다는 건 지나치게 무리한 주장이다. 


p.s.2.

아마도 라이온즈의 6차전 투수운용은 밴덴헐크와 차우찬이 핵심일 것이다. 예상대로 굴러간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테지만 누차 강조하듯 그건 그냥 행복한 상상이고 현실에선 문제가 언제 어떤 식으로 발생할 것인가를 잘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문제는 밴댄헐크가 긴 이닝을 채워주지 못 하는 경우다. 차우찬 역시 믿을만한 투수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점점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결국 바로 그 시점에서의 투수운용이 경기의 향방을 가를 것 같다. 


만약 내가 라이온즈의 감독이라면 경기초반부터 오승환을 대기시킬 것이다. 후반을 기약하기 보다는 초반에 벌어지는 위기상황에서 오승환을 기용하고 경기 후반을 다른 투수들에게 책임지도록 만들 것이다. 단기전에서 가장 애매한 것이 바로 강력한 마무리 투수의 기용이다. 기용할 타이밍을 놓치면 가장 강력한 투수를 내보지도 못 하고 경기를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 고민자체를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었다. 지면 모든 게 끝인 라이온즈의 입장에선 최대 위기상황에선 그냥 가장 강력하고 믿을만한 투수를 기용하면 된다. 이건 변칙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정석이다. 


문제라면 라이온즈의 벤치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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