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 선장과 관련된 표창원 씨의 견해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와 저술들이 많지만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악의 평범함'에 대해서 말한 것들일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그러니까 살인을 저지르는 일을 했던 이가 어떻게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그 일, 즉 살인을 마치 밥을 먹고 씻고 자는 일처럼 일상적으로 해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지적이다.
그렇게 그 녀는 '악이란 일반적인 상상속의 행위들처럼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범죄심리분석가인 표창원이 세월호 선장을 통해 지적하는 것 역시 한나 아렌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선박이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적하지 않았고 사고가 발생한 순간에도 그 사고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연관관계조차 인지하지 못 했다. 마치 아이히만이 수많은 유태인들을 가스실에서 죽이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표창원은 더불어 그런 열악한 작업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방조한 국가의 책임도 지적한다. 늘 그렇지만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여기다. 사건이 터지면 국가의 책임을 묻지만 정작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표창원의 지적을 보자.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건조돼 18년간 운항하다 퇴역한 배를 2년전 국내로 들여와 증축했다 이렇게 낡은 배를 수입할 수 있었던 건 2009년 국토해양부가 규제개혁 차원에서 선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기 때문이다. 2012년 국토해양부가제출된 용역보고서는 ‘최근 연안에서 발생하는 사고 선박은 15년 이상 된 배들이며 노후 선박은 해상에서 각종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노후 선박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규제개혁이란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것들중 상당수는 이윤을 위해서다. 이윤을 위해 실업자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안전같은 건 무시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런 규제개혁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국가권력을 위임해준다.
물론 엄밀하게 진단하자면 단순히 정치권력을 그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남한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글이 있다. 삼성에 다니던 어떤 젊은 회사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며 삼성그룹의 조악한 조직문화를 질타했다는 글이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은 온통 찬성 일색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글의 내용은 그야말로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두자는 자유주의적 경제학에 충실한 글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논리로 이윤만을 위한 규제 개혁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난감했던 건 내 폐쇄적인 성향탓에 SNS라곤 하지만 채 20여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이른바 친구로 등록되어 잇다는 점이고 SNS가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한 이상 나와 크게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글에 대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 경제학의 시각을 대변한다는 댓글은 눈에 띄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주 진보적이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상식적인 판단은 가능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분야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첨예하게 시각이 갈리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박그네와 박그네를 보좌하는 정치인들과 그를 지지하는 지지층들이 여전히 70년대 다까끼 마사오가 벌인 군사 독재정권의 망령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존재라는 것보다도 말이다.
물론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갑자기 좋아지고 이런 불행한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못 하겠다. 그건 광신도들이나 하는 말이지 제 정신박힌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니까. 단지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개의치 않고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자꾸만 결론이 정치 이야기로 흘러가서 조금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독일의 일반 국민들이 히틀러와 나찌의 사실상 인종차별주의인 다른 버전인 게르만 민족주의에 열광하지만 않았더라도 독일의 권력이 나찌에게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랬다면 아이히만은 유태인을 학살하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자꾸만 정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무튼 좀 더 좋은 세상을 원하고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싶다면 나찌 독일의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무서워 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선거기간만이 아니라 권력을 잡고난 뒤에도 무서워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정치조직이 그런 전망을 갖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그런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확률을 더욱 높이는 일일 것이다.
P.S.
그렇지만 안 되겠지? 따지고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한 지도 어언 20년이 넘어간다는 거지. 물론 나처럼 폐쇄적인 성향의 인간이 드넓은 인터넷의 한 구석에서 이런 소리 하고 있다고 세상이 바뀔 리는 없으니 중요한 건 아닌데. 문제는 반백년을 독재정권이 집권하는 동안에도 별 말 안 하던 사람들이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겐 고작 10년정도 기간을 주고도 그마저도 넘치도록 많다라고 말하는 나라고 국민들이라는 거지. 안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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