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아는 게 병.

The Skeptic 2014. 8. 6. 02:53

옛날 학상이던 시절, 난 상경계열 쪽이지만 특이하게 공대쪽에 아는 친구들이 많았다. 공통점이라면 학교에서 밥먹듯 숙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유는 다르다. 공대 쪽 친구들은 실험도 하고 연구도 해야해서였고 난 그냥 학교에 남아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하는 또 한 부류는 이른바 운동권들이었고. 


아무튼 그랬는데 학년이 올라가니 알던 공대 친구들은 대학원도 가고 조교도 하더라. 그런 친구들중에 유달리 건전지를 많이 쟁여놓는 친구가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실험실과 조교 사무실에서 건전지를 많이 쓴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꼭 자기 눈에만 건전지가 떨어진 게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반쯤만 사실이다. 기계에 들어가는 건전지의 전력량과 기계가 소모하는 전력량은 거의 동일하니 건전지가 소모되는 기간 역시 얼추 비슷할 것이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그 친구의 눈에만 그런 것이 띄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기계와 달라서 모든 일상을 주기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건전지가 떨어진다고 한들 늘 그 자리에 그 친구가 있을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 


단순하다. 다른 이들은 건전지가 떨어지건 말건 신경을 안 쓰는 거다. 아주 중요한 기계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것들, 설령 그게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신경을 쓰는 사람인 거다. 


이건 세상상 어디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남들보다 예민해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지만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고 이들의 눈엔 다른 많은 무심한 이들의 무관심속에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삶이 피곤해지는 거다. 


무관심한 이들은 해야할 일을 하지 않기 일쑤이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과거의 기억이나 자신의 편견에 의지해서 마치 일어난 일인 양 거짓말을 하기 일쑤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그런 짓거리를 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 한다. '모르고 한 일인데 뭘 그렇게까지 난리냐'라는 반응이 이런 류의 인간들이 보이는 통상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그런 짓을 단 한번의 반성조차 없이 반복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결국 예민한 이들도 그들과 똑같이 신경을 끊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쯤 되면 조직이 잘 안 돌아간다는지 혹은 낭비라 심하다든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지 하는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런 현상도 아주 심각해지기 전까진 드러나지 않는다.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 수 있는 이들이 멍청하고 무관심한 인간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그냥 면피나 하며 살아가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양이 늘면 질이 좋아진다는 건 그런 측면에서 볼때 사실과 거리가 멀며 막스와 레닌 할배의 견해에 대한 해석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이 아닌 자연과학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오류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뭐 그렇다고 그 반대 쪽이라고 옳은 해석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확률의 문제를 당위의 문제로 치환시키지 않으면 못 견디는 모질이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확률의 문제들을 종교적 당위의 문제로 치환시키 못 하면 불안해서 밤잠을 못 자는 인간들인데 여전히 많은 사회과학자들과 인문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그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심지어 그런 류의 깨달음에 가장 근접한 학문, 인문학일 것이고 그 중에서도 동양쪽이 워낙 그런 류의 언급들이 많다는 점에서 보자면 동양철학쪽일 확률이 높은데 사실 그런 분야에 정통했다는 이들중에도 종교적 당위에 목을 매지 않는 인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게 개인적으로도 편하다는 것 이외에도 그런 식의 언론플레이가 장사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멍청한 인간들이 멍청한 인간들을 등처먹는 거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할 거다. 그냥 유명인과 팬덤정도의 관계라고, 그래서 상호 도움이 된다고 착각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근본주의 개신교 목사들이 하나님, 국가, 민족을 절대시하며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한 거다. 


노후 원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송전탑 문제도 여전하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단순함과 근거없는 이기심과 그것들로부터 발현될 무지와 무관심의 만연을 놓고 보건데 아마도 일본처럼 큰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런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할 거다.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자주 생각하는 건데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 아무 책임도 없다고? 그 사건이 터지기 훨씬전부터 예민한 이들은 이미 그런 사건이 터질 거라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했다. 당신은 그 이야기를 무시한 잘못을 저질렀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물론 나이가 깡패인 나라에선 그 책임은 어린 것들이 지게 될 테지만 말이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밝히는 거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현실에 빗대어 엄밀하게 보자면 역사는 그런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고작해야 결과론으로서의 의미밖에 못 갖으며, 그조차도 매우 휘발성이 높아서 별다른 지속성을 갖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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