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양질전화...?

The Skeptic 2014. 7. 31. 01:13

대충 네 글자로 줄이면 그렇게 되는 걸로 안다. '양이 늘면 질도 좋아진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언뜻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다. 심지어 나름 잘났다고 위세부리는 좌파들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늘 그렇지만 모든 상황에 예외없이 적용가능한 법칙같은 건 없다. 그런 건 신따위나 알고 있을 텐데 알다시피 인간이 신이란 존재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하는 건 100% 사기다. 그러니까 어떤 인간이 신과 동급인 수준에 이르지 않고선 그 레벨차이를 이겨낼 수가 없는데 알다시피 인간이 만들어낸 신,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이란 존재는 절대성이란 걸 갖고 있다고 상정되는 바 절대로 그런 레벨에 도달할 수 없는 인간 나부랑이는 그런 신의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신의 말씀을 전한다'고 떠드는 인간들은 그것이 어떤 의도든 결국 구라를 치는 거다. '나는 신과 동급'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해야 장사가 잘 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고. 


아무튼 그렇다. '예외없는 법칙'같은 건 없는 셈인데 이런 원칙은 이 명제에도 공히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양이 늘면 그 늘어난 양중에서 일부가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높은 수준의 질이란 것이 다시 양으로 전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단계 역시 앞서 설명한 양이 질로 전화되는 것처럼 자동적인 성향을 보인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이 과정은 전혀 검증된 바가 없다. 


흔히 어떤 생각이 대중적이 되면 그것이 한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적인 가치관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성공적이었던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오히려 '초기설정'이란 구조적인 문제가 대중적 인식의 전환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이 '안 좋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것으로부터 탈피하지 못 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물론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말로만 '안 좋다'라고 할 뿐 실제론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초기설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양의 확대는 질적 향상을 담보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향상된 질은 늘 소수라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기독교와 신을 언급하면서 말했지만 수준의 차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좁혀지는 게 아니다. 당연히 향상된 질이 대중화되는 건 어렵다. 자연과학의 측면에선 사실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현상이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층위에선 이게 그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 거다. 


나름 잘났다고 말하는 좌파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다는 386부터 이 즈음의 젊은 좌파라는 이들까지 포괄해도 그들중 이른바 질적 향상이 단계에 이른 이들은 극소수다. 심지어 그들중 대부분은 극우나 우파들이 경멸조로 사용하는 이른바 '좌익좀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게 어느 수준인가 하면 내가 학상이던 시절, 그러니까 근 20년쯤 전에 이른바 운동권들이 태도의 문제, 즉 사회와 대중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서 한참 논쟁을 이어가던 그 시절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태도'에 대해서 나름 어설프게나마 합의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 즈음의 자칭 진보이며 좌파라는 이들중 꽤 많은 이들이 바로 그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그걸 지적하면 열등감에 넘쳐서 극렬한 자기방어를 하느라고 이성을 상실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쯤 되면 진보고 좌파고 없다. 그냥 열등감때문에 남들보다 잘나 보이고 싶어하는 소아병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바로 '좌익좀비'들의 특징인 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상이 그렇게 굴러간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면, 몰랐던 아니다. 알면서도 나름 그냥 잘 버티고 있었던 건데 그걸 세삼 깨닫게 되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 상태에 이르면 다시금 막스 할배와 레닌 할배의 말이 떠오른다. 그 양반들의 말이 모두 맞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맞다. 대중들은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한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막스와 레닌 할배가 틀렸다. 그런 상황이 도래해도 결정적인 변화가 도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왜? 양의 확대가 질적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그것이 다시 대중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 그 결정적인 변화 역시 과거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냥 왕을 바꾸는 수준에서 끝날 뿐인 거다. 


비록 막스와 레닌 할배는 그런 수준을 넘어서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불행히도 아직까지 역사에서 그러 일이 벌어진 경우는 없다. 물론 결과론에 의존해서 하는 말이니 딱 그만큼의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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