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가 없다는 거다.
또라이 불변의 법칙, 제 아무리 살기 좋은 사회라도 늘 일정량의 또라이들은 존재한다는 법칙에 따르는 일베란 애들이 있다. 걔들이 세월호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투쟁... 피식...)을 벌인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 뉴스에선 세월호 유가족과 대리기사간의 폭행사건에 대해서 나오더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그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전혀 새롭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겐 그 폭행 사건이 <매우 정상적인 일로 여겨졌다>
빌헬름 라이히라는 사람이 있었더랬다. 학상 시절 그 양반이 썼다는 책도 몇 권 읽은 기억이 나지만 난 십수년전에 읽은 책의 내용같은 걸 기억할 정도로 비상한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가 한 말중 한 문장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이미 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인용된 바가 있다.
"사회과학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왜 도둑질을 하지 않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게 진실이고 사실이며 자칭 보수라는 이들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에 더 부합하는 행위다. 그런데 정작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때문에 사회과학의 진실한 질문은 도대체 그 사회의 어떤 대중적 가치관이 그런 자연스러운 행위를 못 하도록 만드는가를 따지는 것인 셈이다.
그리고 그 진실한 질문에 따라 위의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자면 일베와 자유 머시기 대학생연합이란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는 열등감 덩어리들이 세월호 사고로 억울하게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단식 투쟁에 대해 폭식이란 조롱을 하는데 왜 유가족들이 칼들고 나가서 그것들을 죽이지 않았는가란 부분을 연구해야 하는 셈이다.
이 질문이 이상한가?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누군가가 당신 앞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라면 칼들었을 거다. 같은 시각에서 다른 사건을 보자.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행사건이 벌어졌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기란 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다시 빌헬름 라이히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어떤 대응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런 조롱이나 중상모략을 듣고도 피해자가 그냥 꾹꾹 눌어 참는 것?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며 싸움도 불사하는 것?
웃기는 건 지금 남한이란 나라는 피해자들에게 전자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보다 더 몸조심을 하고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결도 없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건 마치 여자가 꼬리를 치고 다니니 성폭행을 당한다거나 자기가 일으킨 송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이 이름이 좀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시끄럽게 만든다고 떠드는 얼빠진 소리를 하거나 학교의 명예 혹은 선생들의 안위를 위해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고도 피해자만 조용히 시키면 된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얼빠진 헛소리들이 나오는 건 남한에 변변한 보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의 피해자들은 단순히 육체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에도 직면하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이 이상한 행위를 하더라도 이해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다. 심지어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도 그런 걸 공동체의 가치라고 배웠고 공동체의 안위를 전제하는 한 이건 전적으로 보수가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가치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남한이란 나라의 자칭 보수란 것들은 그 딴 것 모른다. 한 마디로 보수가 뭔지도 모르면서 보수라고 떠드는 거다. 만약 남한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가 존재한다면 일베나 자유머시기라는 얼뻐진 것들이 헛지랄할때 그 자리에 나와서 그것들이 민망핼 정도로 꾸짖었을 거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는 보수 아무도 없었다.
이게 안 좋은 현상인 이유는 하나다. 각종 언론들에선 이걸 사회화합이라고 하더라만 난 그런 두루뭉수리한 소리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이런 현상을 싫어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분명 사건 사고의 원인은 해소되지 못한 채 지나갈 것이고 사건사고는 또 터질 것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아무리 엄숙주의와 도덕주의를 강요하는 나라라고 해도 언젠가는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양상은 대부분 '사적 복수'로 귀결되는 법이다. 영화 '모범 시민'에서 잘 묘사된 바로 그런 식으로 말이다.
가장 비극적인 결말은 그런 사적 복수가 만연한 나라를 거쳐 2차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파시스트 국가가 되는 것일 게다.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무튼 폭행사건이 이슈라는데 난 별다른 감흥 없다. 그 사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오래도 참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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