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스포츠와 연예 쪽 기사들은 뭐든 부풀려야 제 맛이다. 그래서 그런 기사를 읽는 이들 역시 걸러들어야 한다. 김광석의 4집 앨범이 다시 LP발매가 되었는데 완판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전예약을 통해서 판매한 LP의 양은 3,000장이다. 이건 굉장이 애매한 숫자고 평가하기에 따라 아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앨범이라고 부를만한 시장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다 보니 비교할만한 근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며 앨범이라고 해도 미니앨범이 대세다. 예전처럼 정규 앨범 한 장을 발매하고 짧으면 1년에서 길면 몇 년을 곡작업을 해서 다시 정규앨범을 내는 방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미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발매되던 시절에도 이런 류의 흐름, 즉 긴 휴식기 대신 '싱글'이라 불리는 음반을 발표하는 방식은 주로 대중들의 인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방식이다. 그런 방식을 담는 그릇이 디지탈 음원과 미니앨범이란 방식으로 달라진 것 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같다.
'음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란 점 역시 단순히 LP와 관련된 특징은 아니다. 이 역시도 물적 토대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정규앨범이 대세이던 시절엔 비록 중간중간 싱글앨범이 나오더라도 결국 정규앨범에 다시 수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로 해당 가수의 정규앨범만 다 수집해도 완벽한 디스코그라피를 갖출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미니 앨범은 그렇다쳐도 디지탈 싱글이나 음원이 대시 정규앨범 혹은 미니앨범에 재수록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히려 최근엔 그런 류의 작업들, 이른바 리패키지같은 작업은 사실상 일종의 상술로 받아 들여진다는 걸 고려하면 이건 문화적 가치관이 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미 음반 시장 자체가 앨범이 아닌 싱글위주로 재편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그렇다면 각종 기사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LP의 화려한 귀환이 이 판 자체를 뒤집을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LP를 소유한다는 것만으로 소비자들의 기대가 충족될까? 그렇지 않을 거다. 그 LP를 듣지 못한다면 아날로그적 감성이니 뭐니 하는 건 그냥 뜬 구름잡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그 LP를 구동시키려면 사실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일단 턴테이블, 앰프가 구비되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이퀄라이저도 있는게 좋고 당연히 스피커도 필요하다. 물론 스피커없이 헤드폰만 사용하겠다면 스피커는 생략해도 좋겠지만 글쎄다? 턴테이블에 앰프까지 투자했는데 스피커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건 사실 이해하기 힘들다. 차라리 이퀄라이저를 생략한다면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 구동장비들을 갖추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요즘은 LP 자체가 비싸다. 우리의 경우 LP제작기술이 없어서 해외에서 만들어 오느라 더 비싸다고 하지만 외국도 LP가 더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즉 디지탈 음원을 즐기기 위해 지불해야할 비용보다 LP를 즐기기 위해 지불해야할 비용이 더 많은 셈이다. 시장 자체가 워낙 작다보니 당연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초기진입장벽들중 높은 비용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넘기 힘든 장벽중의 하나다. 게다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며 '개인적으로' 그 대체재의 품질이 결코 떨어질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굳이 그 장벽을 애써 넘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바 LP가 가지고 있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단어가 지시하는 것은 '지나간 옛 추억에 대한 향수'지 음악이나 혹은 음악을 구현하는 방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차이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만약 진실로 그런 류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디지털이 LP의 그런 특성을 구현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디지털 음원임에도 불구하고 LP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일종의 특징적인 '잡음들'을 일부러 끼워넣는 경우들은 이미 존재했고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언제고 얼마든지 구현해낼 수 있다.
단지 그런 '잡음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안하게도 난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디지털 음원과 LP사이에 흔히 말하는 '특징적 잡음들'을 제외한 다른 특성이 뭐가 있는가? 꽤 많은 이들이 그런 차이들을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건 아날로그적 기계들이 가지고 있는 기계적 특성의 차이로 충분히 규명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사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주장중의 하나는 '귀로 들을 수 없는 어떤 차이'라는 주장이다. 자신의 감각기관과 인지능력을 모두 동원해도 도무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그 차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즉 지금 내가 디지털 음원이 아닌 LP로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에 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낀다라고 '믿는' 것이다.
아무튼 만약 그런 기계적인 차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른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면 나도 일단은 동의해줄 수 있다. 그러나 나라면 차라리 그걸 아날로그적 감성이 아니라 'DIY정신에 입각한 돈 많이 드는 매니아적 취미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 편이다. 같은 음원이라도 어떤 앰프에 물려서 어떤 스피커로 듣는가에 따라서 소리는 달라진다. 심지어 스피커를 어떻게 놓는가에 따라서도 소리는 달라진다. 그런 차이들을 찾아내고 즐기면서 기계들을 매치시켜나가는 것도 취미다. 다만 그건 아날로그적 감성이란 정체불분명한 단어로 포장할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떤 취미생활이든 오래 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은 가보게 되는 그런 상태일 뿐이다. 게다가 디지털 음원을 가지고도 그런 취미생활은 가능하다.
LP의 재등장과 그것을 둘러싼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아니다. 이미 말했지만 그것 역시 존중받을만한 취미생활이고 언론에서 설레발을 치기 이전에도 묵묵히 그 길을 가던 음악 애호가들도 많다. 그리고 방식이 어떻든 음악이 취미인 이들이기때문에 그런 길을 걸은 이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음악적 지식이나 깊이가 깊은 것도 사실이다. 배울 게 많은 이들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긍정적인 것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상한 말장난을 치진 말라는 거다. 그런 류의 내용없는 미신들은 이미 차고 넘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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