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다. '업그레이드'는 단계를 높이는 것이고 '옆그레이드'는 단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돌아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취미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관용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둘중 '업그레이드'가 더 나은 취미생활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듣기엔 맞는 말같고 대체적으로 취미생활이란 것이 그런 루트를 따라가는 것이 보통이라 정설처럼 받아 들여진다.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취미생활이 일종의 맹목이 되어 버린 게 아니라면 늘상 맞닥뜨리게 되는 건 경제력의 문제다. 버는 돈은 쥐꼬리인데 취미생활에 소꼬리를 쓰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처녀총각 시절 취미생활에 많은 돈을 투자하던 이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나면 취미생활에 돈을 거의 쓰지 못 하게 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그건 불행한 게 아니라 결혼이란 삶의 결정적 변화가 야기하는 변화중 하나에 불과하다. 간혹 그 시절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수는 있지만 그걸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철이 덜 든거다. 내 배우자 혹은 배우자될 사람이 그런 성향을 보이거든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자들.
아무튼 경제력은 취미생활의 동지이자 한계란 건 부정할 수 없다.(뭔들 안 그렇겠냐만...) 이런 경우 '업그레이드'보다 '옆그레이드'가 훨씬 더 유용한 선택지일 수 있다.
음향 기기의 경우도 그렇다. 만약 가격도 비싸고 좋은 기계일수록 궁극의 소리를 들려준다면 업그레이드가 완전한 답일 수 있다. 심지어 그것도 찔끔찔끔 올라갈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방에 가장 비싼 장비들을 구입하는 것이 최고이자 궁극의 방법이다.
그런데 취미생활이란 걸 해본 이들은 다들 절감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보스 공략을 끝냄과 동시에 취메생활이 끝난다면 그건 취미생활이 아니다. '종결이란 없다'는 것이 취미생활의 핵심이니까. 한 브랜드에서 나오는 최고의 기종을 갖고 있고 써보았다고 해서 다른 브랜드의 동일한 장비에 대한 욕심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종결은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마다 가지고 있는 취향이란 게 다양하고 각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음향도 다르다. 여기에 인간의 취향이란 게 한번 고정되면 더 이상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변덕스럽다는 요소까지 추가되면 '종결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 종결은 불가능하나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름 최선의 선택지는 바로 '옆그레이드'다. 각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경제력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지 않는 제품들을 위주로 옆그레이드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 걸 귀찮게 언제 알아보고 다니냐?'라는 같잖은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같잖은 질문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그런 정보를 모으는 게 귀찮다면 넌 취미생활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남들에게 '나 돈많다'라는 허세를 부리기 위해 취미생활을 앞세우는 것'이라고.
난 아직까지 허세와 허영이 취미생활로 분류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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