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팀스포츠에서 스쿼드가 논란거리가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아마도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상업화, 즉 프로화가 되면서 시작된 일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요즘은 아예 아마리그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보니 그게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를 테지만 나터럼 연식이 꽤나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마리그라는 것을 기억할 게다.
아마리그. 선수들이라고 하지만 전문적으로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 특정한 회사에 소속되어 그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운동을 한다. 당연히 요즘의 프로 리그처럼 많은 수의 경기를 소화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 잘 한다고 엄청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저 월급과 운동과 관련된 수당, 경기나 리그 결과에 대한 수당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리그 경기 자체가 적으니 선수수급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고 걸출한 선수 두어명 있으면 어느 정도의 결과물도 가능하다. 지금은 거의 프로화된 대부분의 종목들도 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쳤다. 때문에 사실 아마와 프로의 구분은 단순히 상업화와 그에 따른 제반 여건의 변화만이 아니라 선수 수준의 차이도 의미한다. 지나간 시절의 스타 플레이어와 레전드들에 대한 기억이 사실 어느 정도 거품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설령 그들중 일부가 요즘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갖고 있다 해도 그들이 그토록 대단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는 더 큰 이유는 그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절 리그의 수준이 지금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프로화,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리그의 질도 상승했다. 그덕에 스쿼드란 개념이 등장했고 매우 중요한 전술적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일반 팬들이 보기엔 선수가 넘쳐나는 것 같은 리그 명문팀들이 해마다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는데 공을 들이는 이유 역시 그런 것이다. 리그 최정상의 팀일수록 해당 팀의 수준에 걸맞는 선수가 필요하고 그런 선수는 당연히 비싸니까.
그렇다면 이 스쿼드란 개념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단순하게 말하면 선수들의 머릿수가 될테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1군과 2군간의 수준차이. 선발 출전 선수들과 벤치멤버간의 수준차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2월 28일에 벌어진 사우스햄튼 대 첼시의 경기. 비록 무패우승이란 기록이 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첼시는 올 시즌 EPL 최고의 팀이고 1위다. 그러나 어느새 리그 초반의 부진을 만회한 안방 호랑이 맨시티가 승점 3점차이로 추격해온 상황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리그와는 달리 연말 복싱데이에 평소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르는 상황. 게다가 대진운도 첼시가 조금 더 안 좋다. 당연히 복싱데이의 모든 경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맞붙은 2년 연속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팀, 사우스햄튼. 비록 작년에 구축한 강력한 전력들의 누수가 심했지만 새롭게 가세한 멤버들의 활약으로 올 시즌도 돌풍을 이어가는 추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른바 빅4에 낯선 사우스햄튼이 아직까지 올라있을 정도다. 전통의 강호이자 작년 시즌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으나 핵이빨이 사라지자 리버풀은 중위권에서 헤매고 있고 아스널 역시 기복있는 경기력을 보이며 아직 5위다.
그런 팀과의 경기에 나선 첼시의 선발 라인업은 다소 의외였다. 필리페 루이스와 존 오비미켈, 안드레 쉬얼레는 대체로 벤치멤버지 선발 선수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경기내내 다른 선수들과의 호흡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쉬얼레는 거의 보이질 않았고 미켈은 실수를 연발하거나 주전 미드필더인 마티치와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필리페 루이스 역시 내내 인상적인 모습은 없었다.
결국 팀 스포츠에서 스쿼드란 단순히 선수들의 머릿수가 아니라 팀 전력이나 팀이 지향하는 전술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녹아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미 언급했지만 예전보다 엄청나게 늘어난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요즘같은 상황에선 당연히 베스트 라인업만이 아니라 후보 선수들에게도 이런 능력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올 시즌 첼시를 가장 강력한 리그 우승팀으로 보고 있으며 나아가 유럽 클럽 축구도 제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이 출동한다면?) 그런 첼시가 가지고 있는 약점중의 하나가 바로 이 스쿼드의 문제란 것이 이번 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주전 미드필더인 오스카와 윌리안이 빠지자 중원의 강력함이 사라졌고 마티치 혼자 바빴으며 덕택에 공격에 더 신경을 써야할 아자르와 파브레가스가 자꾸만 수비로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윌리안이 투입되자 첼시의 경기력이 전반전보다 확실히 나아진 것이 그런 점을 반증한다. 리그 우승만이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노리는, 그래서 더 많은 경기를 치루어야 하는 첼시의 입장에서 보자면 스쿼드의 문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첼시와는 달리 여전히 안방 호랑이인 맨시티와 맨유가 그런 점에서 더 낫다는 거다. 물론 그 의미까지 똑같지는 않다. 스쿼드란 면에서 가장 안정권에 있는 팀은 맨시티다. 주축 선수들이 이런저런 부상으로 번갈아 출전을 못하는 와중에도 경기력이나 공수밸런스에서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문제를 일으키는 건 주전 센터백인 콤파니를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정도인데 콤파니가 리그 최정상급의 수비수라는 걸 고려하면 다른 선수들의 수준이 그만 못한 것이지 결코 떨어진다고 볼 순 없다.
맨유의 경우는 다소 애매한게 맨시티와 비슷해 보이지만 경기력 자체는 앞선 팀들보다 여전히 떨어진다. 즉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은 떨어지지만 적어도 그 정도 수준을 맞춰줄 선수는 풍부하다. 아스날도 마찬가지다. 물론 맨시키만큼의 안정성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리그 최강의 팀들 가운데서 가장 떨어지는 팀은 리버풀이며 그 다음이 첼시일 것이다. 그래서 난 다른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1월달에 이적시장이 열리면 눈앞의 성적과는 달리 당장 바쁘게 움직일 팀중 하나가 첼시일 거라고 본다. 설령 올 시즌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첼시는 수준급 선수를 몇 명 더 추가해야 한다.
2.
많은 이들이 올 시즌 맨유의 부진을 예상하며 부상과 수비라인 붕괴를 들었다. 실제로 시즌 초반 그 예상은 보기좋게 맞아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유는 수비수가 아니라 공격수를 영입하는 정책을 썼다.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고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잘못된 결정은 아니다.
어차피 수비진은 걸출한 선수 몇 명 영입한다고 단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스쿼드란 기준에서 보자면 주전 수비진만이 아니라 백업 수비진도 완성해야 하고 이는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문제는 맨유정도 되는 레벨의 팀은 리빌딩을 핑계로 부진한 성적을 내는 것이 용납되는 팀이 아니라는 거다. 그랬다간 모예스 꼴이 나기 십상이다. 결국 어차피 장기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수비진 구축할 시간도 벌고 성적도 내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차라리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빅클럽이니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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