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자끄 라캉이라고 있다.

The Skeptic 2015. 2. 11. 16:28

이 양반이 한 말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도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일 게다. 다른 소재를 다룬 저작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사실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이 문구 역시 어느 책에서 인용한 걸 본 것일 뿐이다. 


아무튼 이 언명이 기억난 것은 이 언명을 인용한 책에서 이에 대한 해석내지는 주석같은 걸 달아놓았는데 그게 참 괴이해서다. 그 해석에 따르자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인 양 인지하고 그것을 따르다 보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성격이나 정서장애같은 것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 '자신의 욕망을 찾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 졸라 그럴싸해 보이는 해석이어서 대부분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해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라캉이 '타인'이라고 언급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특정한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타인'이란 쉽게 말해서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타인의 욕망'이란 것은 개인이 아닌 개인들이 모인 집단속에서 나름 타당하다고 인식되는 바의 욕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가치들, 이를테면 자본주의 질서가 심화될수록 돈에 대한 가치는 점점 더 증대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돈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여기서 타인의 욕망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돈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위의 해석에서 마치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거나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어떤 것'인 양 언급하는 자신의 욕망이다. 그러나 누차 강조하지만 특정한 그리고 구체적인 집단을 벗어난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고로 그런 류의 개인의 욕망, 자신의 욕망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이 지향하는 욕망이란 것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 집단적 욕망이 어떤 물질적 배경을 통해 형성된 것이고 그 역사적 근원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역추적을 통해 우리는 집단적 욕망의 실체에 다가갈 수가 있고 그런 사실을 통해 그 집단적 욕망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비로서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위에 인용한 자끄 라캉의 언명에 대한 해석중 자신의 욕망이란 것은 타인의 욕망 혹은 집단의 욕망과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집단적 욕망, 타인의 욕망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얻게 되는 판단능력이자 결정권한인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이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나름 과학적 고찰이란 것을 해내면서 뜬 금없이 증명할 수 없는 '타고난 욕망'과 같은 엉뚱한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태도 때문이고 불행히도 이런 태도가 너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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