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시스템'.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 거 아니다. 신뢰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란 의미다. 인간사중 상당수는 예측불가능한 것들이고 그런 예측불가능성중 일부는 불가피하게도 사건사고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당연히 그 사건사고엔 인간의 실수가 전제되며 결과적으로 인간의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게 마련이고 그것들 덕에 인간에게 대한 그리고 집단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마련이다.
'신뢰 시스템'이란 그런 피치못하게 발생하는 문제들로부터 어떻게 신뢰를 다시 구축해낼 것인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시스템'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그 과정을 일정하게 도식화된 과정으로 만들고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비단 개인 대 개인, 혹은 개인 대 집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박윤하 논란을 기점으로 촉발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논란은 꽤 많은 시사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이미 언급한 것처럼 1)내겐 박유하의 언급이 전혀 새롭지 않으며 2)그 사실들과는 별개로 박유하가 들고나온 현실적 대책이란 것이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보며 3)그의 시선이 지나치게 일본의 식자층과 반제국주의 지식인들에게 경도되어 있는 탓에 대중적인 인식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고 보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내겐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반면 2차 대전과 일본의 제국주의 청산은 열강들의 이해다툼과 인종차별적 시선탓에 상당 부분 왜곡되었고 그로 인해 남한과 일본 양국에 모두 무사히(...) 잔존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제국주의 세력 탓에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과잉되고 가장 큰 피해를 본 노동자 계급과 여성 문제는 의도적으로 축소된 측명이 강하다. 그걸 지적했다는 것은 꽤나 의미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류의 논란은 늘상 의도와는 다른 왜곡이 판치는 것이 보통이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엔 다소 엉뚱하게도 별 상관없어 보이는독일을 비롯한 유로존의 경제위기를 다룬 기사에서 그런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2차대전 당시 그리스의 국부를 강제로 수탈한 독일이 사실상 아무런 배상도 하지 않았고 최근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그리스는 그와 관련한 배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기사의 내용은 유로존의 위기에 사실상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이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 하고 있어서 유로존 국가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는 것이며 그리스의 사례가 그런 측면이란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난 이 주장에 대해서도 그다지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이니 다음에. 아무튼 이 기사에서 어떤 이들은 독일이 그리스에 대해서 전후 배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전후 배상 역시 결국엔 국가의 힘에 의해 불평등하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들면서 비록 경제협력이란 허울을 뒤집어 썼지만 배상도 하고 사죄와 사과도 표명한 일본이 독일에 비해서 떨어질 게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난 전후 배상이 불평등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단순히 힘의 논리로 진행되었다고 보진 않는다. 이른바 승전국인가 단순히 해방국인가란 차이가 존재하니까. 그런데 사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사죄와 사과다. 독일과 일본의 그것이 동일한가. 난 아니라고 본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단순하다. 지속성이다. 알다시피 독일은 전후 제국주의적 침략과 지배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사죄와 사과를 해왔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심지어 정권 차원에서 제국주의 침챡과 지배에 대해 정당화를 시도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큰 차이다. 앞서 언급한 '신뢰 시스템'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과거의 원한을 가지고 미래를 살 필요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평가와 그에 따른 처분이 필요한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이 역시도 일종의 신뢰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해당사국중 하나가 그 평가와 처분에 대해서 동의와 반대를 반복한다면 어떨까. 누구라도 그런 국가나 개인을 신뢰하진 못할 것이다. 즉 일본의 경우 정권차원에서 벌어지는 이런 류의 갈짓자 행보가 독일의 그것과 사뭇 다른 것이며 이는 '신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 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된다.
심지어 이런 신뢰 시스템 붕괴는 피해 당사국들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과잉으로 몰아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남한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과잉의 시작 역시 전후 처리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믿을 수 없는 행보로부터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얻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단순히 일부분의 사실만으로 일본이 독일보다 못할 게 없다는 주장를 펼치는 건 참으로 모자란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구름먹고 바람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명 성남시장 대선주자? (0) | 2015.04.11 |
---|---|
신뢰시스템. 2. (0) | 2015.04.01 |
차별. (0) | 2015.04.01 |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0) | 2015.02.12 |
자끄 라캉이라고 있다. (0) | 2015.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