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가 미국엘 갔고 그 문제로 미국에서도 남한에서도 말들이 많다. 주로 2차대전 당시의 전쟁범죄에 대한 것들이 이슈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민족주의적 이슈에 가려진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바로 미일 군사동맹에 대한 부분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에 대한 이야기도 슬슬 터져나오는 중이다.
그 이야기들중 상당수는 우리 외교의 무능에 대해서 질타하는 내용들이다. 여야할 것 없이 그리고 보수, 진보할 것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 당연히 시각은 약간 다르다. 여권과 자칭 보수라는 이들의 주장은 미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이란 밀월관계를 형성하는 동안 왜 남한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깍두기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 마디로 남한이 일본보다 미국과 더 친하게 지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야권(?), 진보쪽의 주장은 그 미일군사동맹으로 인해 일본의 군사력 증대와 일본 군대의 적극적 방위라는 측면에 집중한다. 즉 형식적인 차원에서 이제 미국과 일본이 합의를 하면 일본군이 남한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 이를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위의 두 가지 주장이 모두 다 그다지 큰 현실성은 없다고 보는 편이다. 먼저 미국과 일본의 밀월관계에 대한 지적이다. 한 마디로 '전혀 새롭지 않다' 누차 이야기한 바지만 미국의 입장에선 남한보다 일본에 더 공을 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과거 2차대전 이후 벌어진 잘못된 과거 청산의 가장 큰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과 근현대사에서 미국이 사실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군사독재정권을 방치했다는 점 때문에 남한에서 미국의 입지는 그렇게 공고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 혈맹을 부르짖는 이들도 있지만 알다시피 나라 꼴이 비정상이라 그런 봉건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반과학주의가 판을 치지만 알다시피 이런 류의 뜬 구릅잡는 주장은 그 바탕이 취약한 것이 보통이다.
반면 그런 점에서 일본은 남한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이다. 그리고 지정학적인 차원에서 봐도 동북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남한이나 일본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긴 하지만 만의 하나 둘중 하나만 남는다고 해도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이런 관계는 북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해당 미사일의 사거리가 꽤나 애매하게, 그러니까 남한을 타격목표로 한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길게 설정되는 것이다.
혈맹을 주장하며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부닥거리를 해대는 반편들이 들으면 많이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남한을 혈맹이니 뭐니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래서 남한과 일본이 2차 대전당시의 전쟁 범죄 문제로 갈등을 빚을 때마다 뜨뜻미지근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일본군의 작전 범위와 관련된 사항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은 꽤 날카로운 편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들고 싶어하는 건 아베만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기도 하다. 그럴법한 것이 불의의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히 돈이나 물자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물리력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동북 아시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의 입장에서 가용가능한 물리력은 얼마 안 되는 미군과 남한군이 전부다. 현재의 일본 헌법으론 일본군은 그런 일에 참여할 수가 없다. 충분히 가용가능하고 무장 상태만 놓고 보면 그래도 서열 10위안에 들어가는 군대를 그냥 놀린다는 건 미국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일 수 밖에 없고 미국은 그런 상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미국의 시각이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미국의 시나리오다. 동북 아시아의 국가들은 그보다는 2차대전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보통국가로의 회귀를 반기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에선 1차적으로 북한이 문제거리고 2차적으로 중국이 문제겠지만 중국, 북한 심지어 남한의 경우도 일본은 일종의 가상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의 입장에선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그런 의문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이 여전히 최강대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한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보통 국가로의 회귀가 2차대전 당시의 제국주의 국가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미국의 시각이라는 문제가 있다. 중국, 남한, 북한의 우려는 비록 여전히 가상의 영역에 놓여 있지만 불안감 자체는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다. 그 문제를 해소하지 못 하는 한 일본을 둘러싼 동북 아시아 국가들간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난감함이 표출된다. 그런 문제를 해소하면서 일본을 적극적인 동맹 국가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주변 국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문제는 일본 내에서 미국의 그런 방향에 적극 동조하는 집단이 과거 2차대전이란 전쟁범죄를 저지른 세력이란 점이다. 만약 일본이 그들이 아니라 다른 정치세력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선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건 동북아시아 국가들, 심지어 남한조차도 반대하는 상황인 거다.
그런 난감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번 아베의 미국방문에 대해서 추측한 이들도 있다. 즉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보통 국가로의 회귀를 더욱 지원할 것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일본에게 2차대전이란 전쟁범죄에 대한 지속적인 사과와 반성을 촉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언급했다시피 현재 일본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기본적으로 2차대전 전범들의 적자와 다름이 없고 국내의 지지세력 역시 그런 층이라는 점이다. 만약 현 일본의 정권 장악세력이 그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을 표한다면 당장 자국 내의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현 집권세력은 그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뒤로 켕기는 것이 많은 이들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마치 박그네가 그렇게도 가신들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 역시 자신감 부족과 그로 인한 불안감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쉽게 말해서 동아시아의 정세는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그로 인해 발생할 부정적인 모습들을 제외하고 그나마 긍정적인 요인들이나 혹은 방법을 들자면 이미 자주 지적한 바 있지만 남한과 북한의 관계개선이다. 물론 이는 표면적으로만 평화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과 미국의 공조체제가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으며 이는 상당 기간 긍정적인 영향력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매개물을 동원하지 않고도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
결국 동북 아시아의 평화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의해 정립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게 단순히 미국과 중국이 나름 적대적인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관계 개선은 일본과 남한의 극우 파시스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현재 남한이나 일본의 집권 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란 점이다.
물론 이미 지적했지만 사실 그들은 무시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들에겐 맹목만이 있을 뿐 논리같은 건 전혀 없기 때문에 힘으로 찍어 누리기만 해도 금방 수그러드는 이들이기 때문인데 문제는 내부적인 정치적 역학 관계상 그들을 마음놓고 무시할 수 있는 국내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일 게다.
외교 이야기를 하다가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 감이 있다. 아무튼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에 대한 두 가지 우려가 있는데 그 우려들중 큰 의미가 없는 건 전혀 없다는 것이고 만약 동북 아시아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러니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든 아니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든 아니면 동북 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기여하든 상관없이 변화를 촉발하고 싶다면 그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과 남한내의 극우 파시스트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지를 박탈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실체 자체가 그다지 유의미한 집단은 아니더라도 그런 정치적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남한과 일본의 정치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고 당연히 동북아시아의 상태에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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