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박진만, 이종범 그리고 숏스탑

The Skeptic 2009. 2. 26. 01:24

당대 최고의 유격수질을 자랑하던 박진만이 어깨부상때문에 이번 WBC 참가가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한 편 안타깝고 한 편 불안하다. 아무리 타자들의 능력이 향상일로에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어차피 대부분은 10번에 7번 이상은 아웃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괴물같은 투수들이 혜성같이 등장해서 삼진 수가 부쩍 늘어난 것도 아니다. 결국 안정된 수비력이 뒷받침된 팀일수록 승리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단기전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하다. 물론 공치고 받는 걸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니 아마추어들처럼 실책 한번에 갑자기 와르를 무너지는 일은 없을 테지만.  -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고교 야구가 훨 재밌다. 실책 한번에 승부가 갈리는 상황이니 보고 있는 내내 조마조마하기가 이를 데 없다. 긴장감 쵝오!

 

개인적으로 순전히 피지컬적인 면만 따지고 들면 박진만보다는 이종범이 훨씬 앞선다고 본다. 그의 탁월한 주력은 단순히 전방질주만이 아니라 사이드 스텝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실제로 다른 유격수들같으면 잡으러 갈 생각조차 못 하는 타구를 기어이 쫗아가 그야말로 Stop 시키고야 마는 그의 수비를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찰 지경이다. 때문에 상대 팀 타자들은 유격수와 3루수 사이로 안타성 타구를 날리고도 전력을 다해 1루로 달려야 했다. 온전히 유격수가 이종범인 탓이다. 그러나 박진만은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유격수다.

 

실제로 이종범보다 박진만의 수비가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종범이라면 파인 플레이를 보였을 타구를 상대하면서 정말 별 것아닌 범타성 타구인 양 처리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 타자의 특성과 투수와 포수 배터리의 구종 선택 등등을 고려하여 미리 타구의 방향을 짐작하는 지능형 플레이어인 것이다. 이런 유형의 플레이를 보인 첫번째 수비수는 다름아닌 김재박이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을 단순비교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결국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상당한 것이다. 물론 초창기 프로야구에서 김재박이 활약한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프로와 지금은 또 현격하게 레벨 차이가 난다. 게다가 미리 짐작을 하고 있었다곤 해도 타자의 배트에 맞고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드는 볼을 유연하게 처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진만은 그 역시도 아무 것도 아닌 양 처리해 버린다. - 지금은 MLB로 간 롯데의 최향남이 작년 시즌 내내 빠른 투구타이밍으로 인해 '퇴근 모드'란 별칭을 들었는데 사실 그보다 먼저 '퇴근 모드'를 보여 주었던 선수가 박진만이 아닐까 싶다.

 

투수들이 구사하는 구종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고, 타자들에 대한 분석 역시 치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몸쪽으로 달려드는 150킬로 이상의 볼을 잡아당겨서 홈런을 만들어 내는 알버트 푸홀스같은 괴물 타자가 아닌 이상 대개의 타구방향은 확률적으로 예측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경기중에 그런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예측하고 다른 선수들보다 한 박자, 혹은 반박자라도 먼저 움직이는 선수들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여전히 이종범의 힘이 넘치는 플레이를 선호하지만 최고의 숏스탑을 고르라면 박진만의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지능적인 플레이는 이제 프로야구판의 유격수들에게 일종의 교본이 되어가고 있다. 먼 훗날 진정한 수비형 유격수의 첫번째 완성형으로 기록될 선수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난 여전히 이종범이 좋다. 그의 체형상 유연성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그래서 스피드를 동반한 파워로 만회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이 존재하지만 그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그는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가 아니라 공격형, 그것도 경기 자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선수라는 점에서 박진만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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