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아마 최근 몇 년까지도 난 이 말을 큰 의심없이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이 문구의 진실성, 혹은 한계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모든 종류의 언명들중 완전무결하게 진실을 가리키는 것은 없다. (아마 문인들중 몇몇은 아직도 이런 문구를 찾아내기 위해 오늘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테지만) 더우기 인간이란 최초 발화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아무튼 내가 이 언명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이유는 이렇다. '살아남았다'는 단어가 의미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언제나 과거의 사실이란 것이며, 또한 늘 결과만을 지칭한다는 점이다. 이 쯤에서 아주 당연한 질문 한 가지가 튀어 나온다.
"과연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가?"
대부분의 언명에 바로 이 <어떻게>란 꼭지가 붙으면 설명이 참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단순히 사실이나 상황만을 지칭할 뿐이지만 <어떻게>가 붙는 순간 가볍게 보면 처세술의 노하우요, 무겁게 보면 윤리적인 요건을 따지는 물음으로 변하는 것이며, 나아가 의심할 나위없는 감정적 선언문이 의심과 분석으로 대상으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특히 위에서처럼 '강함'이란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문구에서 <어떻게>란 과정의 문제가 생략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이미 과정따위 보다는 결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지만 이미 몇몇 분야에선 그런 현상이 올바르지 않다거나 혹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에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스스로의 삶과 행동에 대해 가장 인간적인 질문이나 의문을 갖거나 던지지 못한다 해도 계속해서 인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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